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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kg 감량’ 여고생 어머니가 말하는 ‘다이어트에서 죽음까지’

입력 | 2007-06-09 03:08:00


“반가워∼. 할머니도 있어요. 엄마도 있어요. 우리 엄마예요. 그리고 나도 있어요. 안녕∼.”

2005년 10월 대전의 한 종합병원. 열네 살의 이모 양은 휴대전화로 세 살배기 이종사촌 동생과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채 병상에 힘없이 기댄 외할머니, 이를 어두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어머니 김모(40) 씨의 모습을 차례로 촬영했다.

마지막으로 동영상에 손을 흔드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살이 찐 얼굴을 가린다고 짧은 머리를 얼굴 쪽으로 끌어당긴 모습이었지만 이 양은 쾌활하게 웃었다. 동영상에는 무거운 병실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애교를 부리는 발랄한 10대 소녀가 들어 있었다.

다이어트 성공 사례로 TV에 출연했다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전의 여고 1학년생 이 양. 딸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김 씨는 8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동영상을 보여 주며 “예쁜 살 빼고서 왜 그렇게 됐느냐”며 흐느꼈다.

▶본보 7일자 A14면 참조

▶ 악플 때문에? 40kg 감량해 TV출연했던 여고생 목숨 끊어

○ 살인적인 다이어트, 그 끝

이 양은 초등학생 때에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는 먹성 좋은 아이였다. 햄버거, 치킨이라면 멀리서도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몸무게는 10대 초반에 87kg까지 불었다.

뚱보라는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이 양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2005년 7월 이 양은 공기에 수북이 담아 먹던 밥을 세 끼 모두 3분의 1로 줄였다. 군것질도 뚝 끊었다. 한 달에 몸무게가 2, 3kg씩 서서히 줄었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 대신 엄마처럼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외할머니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뜬 그해 12월부터는 아예 굶다시피 했다. 몇 숟가락의 밥으로 하루를 버텼다. 급식비를 내고도 점심을 먹지 않아 담임교사가 집으로 전화하는 일도 잦았다. 밥도 칼로리가 더 적다는 빵으로 바꿨다.

지난해 말부터 3개월 사이에는 30kg가량이 쑥 빠졌다. 이 양은 곧잘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뚱뚱했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꺼내 보이며 변한 모습을 자랑했다. 주말마다 몸에 꼭 맞는 레이스 달린 옷을 2, 3벌씩 샀다.

하지만 급격한 체중감량과 함께 늘 엄마에게 살을 비비며 살갑게 굴던 이 양의 모습도 사라졌다. 가족들과 눈도 잘 맞추지 않았고 작은 말에도 곧잘 상처를 받았다.

강박과 불안도 심해졌다. 여전히 아침은 저지방 우유 한 잔과 과일 조금, 점심은 빵 반쪽으로 해결했다. 오후 1시 이후에는 아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어머니 김 씨는 “조금만 먹어도 ‘살찐 것 같다’고 초조해해서 가족들도 딸 앞에서는 잘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은 먹지 않는 대신 이 양은 저녁식사 때면 함께 사는 이종사촌 동생을 옆에 앉혀 놓고 밥을 먹였다. 어머니 김 씨가 속상한 마음에 “적당히 먹여. 살찌면 너처럼 고생하잖아”라고 말하면 이 양은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 1, 2시간씩 악을 쓰곤 했다고 한다.

○ “더러운 세상 먼저 떠날게”

이 양은 4월 28일 SBS TV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40kg 감량 미녀’로 소개됐다. 방송 출연 이후 학교는 물론이고 인터넷 등에서 ‘스타’가 됐고 이 양의 미니홈피 방문자 수는 하루 1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관심은 공격으로 바뀌었다. 당시 프로그램 패널 중 한 명이었던 유명 아이돌 가수 그룹 S의 멤버와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악플(악성 댓글)’과 협박전화가 잇따랐다.

어머니 김 씨는 어느 일요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미니홈피만 바라보고 있는 이 양에게 “컴퓨터 좀 그만 하라”고 했다. 이 양은 곧바로 “정다빈 언니처럼 내가 악플이 올라와서 스트레스 받아 똑같이 죽었으면 좋겠느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이 양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글이 달릴 때마다 삭제를 하거나 해명 글을 달았다. 어머니가 얼핏 훔쳐 본 모니터에는 ‘너 다이어트 약 먹고 살 뺐지’ ‘너 낳고도 네 엄마가 미역국 먹었냐’ 등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결국 이 양은 “할머니 저 따라 가요. 엄마 죄송해요. ○○(이종사촌 동생) 예쁘게 키워서 딸 삼아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방에서 목숨을 끊었다. 친구 3명에게는 ‘이 더러운 놈의 세상. 친구들아 나는 간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 김 씨는 “죽기 일주일 전 ‘엄마, 나 정신과 치료 좀 받아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탄식했다.

“어렸을 적부터 스타가 되고 싶어 했던 아이예요. 살을 빼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이렇게 목숨을 끊어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대전=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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