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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별] ‘날라리 신부’의 인생친구 탤런트 손현주

입력 | 2007-06-02 03:01:00


탤런트 손현주 씨의 인터넷 팬 카페 이름은 ‘뚝배기’다. 꽃미남은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연기에서 뿜어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좋다는 이야기다. 그가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방송사 탤런트 공채로 입사한 1980년대 후반은 꽃미남 전성시대였다. 뚝배기는 10년 동안 단역을 면치 못했다. 생긴 대로 도시생활의 지극히 평범한 소외된 군상 중 한 사람의 역할이 그의 몫이었다. 월급도 없이 단역 한 건에 몇만 원 수입이 고작이었다. 배역처럼 당시 생활 또한 지지리 궁상이었다.

그가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드라마 ‘첫사랑’이었다. 그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을 노래하는 뒷골목 무명가수로 나왔다. 주인공 최수종과 배용준이 형제로 나오고 그들의 누나인 약간 모자란 역할이던 송채환 씨의 ‘얼빵’한 남자로 등장했다. 쟁쟁한 꽃미남 주인공들보다 빛나는 조연이었다. 바보들의 순수한 사랑은 안방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저 단역으로 도시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의 역할을 두루 섭렵해 왔던 그는 이 드라마에서 ‘배우’라는 신고를 한다. 이때 CF 제의도 몇 건 들어와서 그 돈 가지고 장가도 갔다고 한다.

손현주 씨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 미니 시리즈 ‘러브레터’ 때였다. 이 드라마에는 주인공인 조현재와 외삼촌인 손현주가 신부 역할로 나왔다. 천주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이다 보니 방송국에서 내게 자문을 구하는 제안이 왔다. ‘첫사랑’ 이후 나의 ‘별’이 돼 버린 손현주가 등장한다니 오케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그는 연출가와 함께 내가 시무하던 성당에 찾아와 연기 수업차 내가 집전하는 미사를 구경했다. 식사를 하면서 대뜸 이렇게 물어 보았다. “이 사회에서 연기자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때요? 좋아요?” 그러자 그는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좋아요” “짭짤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맛깔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 같았다.

드라마 자문에 응한 이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귀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서로 하루 스케줄을 알고 지냈다. 둘 다 산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주위의 몇몇 지인과 산행을 즐겼다. 산행 후 걸치는 한 잔의 막걸리 맛이란!

그래도 명색이 천주교 신부와 개신교 집사가 만났는데 음주가무가 전부일 수는 없었다. 술 마시면서 장애어린이 합창단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나라에 500개도 넘는 어린이합창단이 있는데 장애라는 이유로 장애어린이들은 그 어느 합창단에서도 입단 자격 자체가 원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홍익대 앞에서 자선 호프집을 열었다. 그의 친구 연기자들이 대거 참여해 주었고 많은 신도가 그들과 함께하려고 호프집은 성시를 이루었다. 창단 2년째인 장애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의 단원 52명은 오늘도 씩씩하게 노래하고 있다. 창립식 때 그의 짧은 인사말이 생각난다. “여러분! 이 어린이들이 계속 노래하게 해 주세요!”

작년에 백혈병 환우들의 실상을 알리는 행사에 동참해 그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올랐다. 희귀병인 백혈병은 의료보험 혜택이 없어서 어떤 환우는 한 달에 몇천만 원을 들여서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현실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한 행사였다.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당시 드라마 ‘장밋빛 인생’의 남자 주인공으로 활약하던 그의 역할이 필요했다. 비행기 멀미가 심해서 좀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던 드라마 속 상대역인 최진실 씨도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평소 등산을 전혀 안 하던 최진실 씨는 해발 4200m의 안나푸르나봉 베이스캠프까지 아줌마 특유의 ‘깡다구’를 발휘해 등반에 성공했다.

그를 만나면서 TV 드라마 속 이미지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에 가장 놀랐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면 그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주며 “잡사봐∼” 하며 곰살맞게 군다. 요즘 거리엔 그의 사진이 담긴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삶의 희망이 로또 한 장밖에 없어 보이는 소시민적 중년 남성을 그처럼 잘 대변하는 사람도 없다.

2003년 ‘앞집 여자’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등극한 이후로 그는 요즘 상한가 배우다. 그의 대학 동창들은 20대 초반 스타가 됐는데 그는 20년이 지나서야 별이 되었다. 꽃미남 동료들은 지는 별이 되었지만 이 별은 앞으로 30년은 더 갈 것 같다. 서민적인 인상이 물씬 풍기는 그의 연기는 대중이 자기 삶의 일부인 것처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는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너무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산악자전거를 타면서 한강을 누비고 산에 오르던 때가 그립다. 요즘 그를 만나기 위해 가끔 촬영 현장을 찾는다. 대기하는 중에도 그럴 듯한 그의 자리가 있건만 그는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 조명 스태프, 연출부 스태프 등과 담소 중이다. 언제나 그는 이렇게 ‘뒷골목’에서 서민들이 좋아하는 ‘뚝배기’로 남을 것이다.

홍창진 신부·천주교 수원교구 사회국장

■“신부님 만나서 좋은 일에 동참”

“손현주, 권상우, 최진실, 박정자, 윤석화….”

자칭 가톨릭계의 ‘날라리 신부’인 홍창진(47·천주교 수원교구 사회국장·사진) 신부. 그에게 ‘내 마음속의 별’로 꼽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연예인 이름이 줄줄 나왔다. 해마다 휴가 때면 히말라야에 오르고, 윈드서핑과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에 기타와 가야금 연주까지…. 홍 신부는 가톨릭계에서도 ‘마당발’ ‘튀는 신부’로 유명하다.

그는 노래방에서 10대들이 울고 갈 정도로 최신 유행가와 현란한 춤 솜씨를 보여 주는 음주가무의 달인이다. 그리고 늦은 밤에도 호출만 하면 달려 나오는 사람이 최소 10명이 넘는다.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정말 신부 맞아?’라고 묻는다.

홍 신부의 인맥은 스님, 목사, 산악인, 연예인, 배우까지 넓게 뻗어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종교 간 대화위원회 총무 자격으로 평양과 금강산 등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했고, 장애인 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 대표, 무가지 천주교 신문 발행, 종교시설에서 공연 관람하기 캠페인 등 색다른 종교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화인 탤런트 등과 함께 월요일마다 등산하는 ‘월산회(月山會)’ 활동을 하고 있고, 산악인 한왕용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에서 클린 마운틴(청소하면서 등산하기)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자동응답시스템(ARS)을 통해 자활기금을 마련하는 ‘한마음 운동’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의 ‘소액대출’ 사업을 본뜬 이 사업은 17일 경기 평택시에서 기지촌 여성들의 ‘1000원짜리 국숫집’오픈으로 첫 성과를 낳을 예정이다. 그가 하루찻집을 열었을 때 수많은 연예계 인맥이 총동원된 것은 물론이다.

홍 신부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소속사 대표님’으로 부른다. 손현주 씨는 “홍 신부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보람 있는 일에 동참하게 됐다”며 “성직자의 엄숙한 틀을 벗어던지고 젊은이들에게 늘 다가서려는 자세가 홍 신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