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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과천 신도시 착공

입력 | 2007-03-14 03:00:00


“버스가 승객을 적게 태우려고 정류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면 사람들이 뛰고 달리고 매달리고 하는 것이 수치심도 자존심도 없는 짐승들의 세상 같아요.”

1992년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 사는 한 여고생이 언론사에 투고한 내용이다. 서울로 통학하는 이 학생은 “버스는 보통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며 초만원 버스 안에서는 온몸에 땀이 배고 숨조차 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신도시의 신(新)고통’인 교통난을 고발한 것이다.

격세지감 아닌가.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버블 세븐’ 지역 중 하나로 지정된 분당에도 이런 끔찍한 시절이 있었다니….

그것은 급조돼 온 한국 신도시의 숙명 같았다.

1993년 국토개발연구원의 한 연구보고서는 수도권 신도시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어느 신도시나 자족적인 도시가 되려면 그 자체의 행정, 교육, 문화, 경제 등 종합적인 기능을 지녀야 하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짧은 기간에 급하게 도시를 건설하면 도시다운 도시가 조성되기 어렵다.”

1980년 3월 14일 착공된 경기 과천신도시도 이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과천의 청사진은 꿈 같았다. 쾌적한 전원도시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공원 및 녹지를 전체 대지의 23%(16만4000평)나 잡았다. 자연경관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건축물의 높이와 배치도 규제했다. 통신 전기 시설은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지하에 묻기로 했다. 도심을 단순히 통과만 하는 차량은 외곽으로 우회하게 해서 보행자 우선의 교통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그러나 과천도 분당처럼 오랜 기간 지긋지긋한 교통난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의 주택 부족 현상을 다소 완화하고 중앙행정기능의 일부를 이전해 왔지만 서울의 베드타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할 때마다 다짐하는 ‘서울로 출퇴근할 필요 없는 자족 도시 만들기’는 거의 예외 없이 공염불로 끝났다.

그러나 여전히 신도시는 시세 차익이란 금광을 캘 수 있는 ‘한국의 엘도라도’인 모양이다. 최근 인천 경제자유지역 내 송도신도시의 오피스텔 청약 현장은 수만 명이 몰려 부상자까지 발생하는 아수라장이 됐다.

과천 분당 같은 옛 신도시들이 자신들의 구태가 반복되는 현실을 보며 이렇게 혀를 찰지 모른다. “신도시가, 신도시다워야 신도시지.”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