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 ‘베어벡호’가 2007년 첫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에서 승리했다. 짧은 소집기간, 원정경기, 프로축구 비시즌 기간에 떨어진 선수들의 경기감각 등 세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이룬 새해 첫 승리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또한 지도력을 의심받아 온 핌 베어벡 감독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베어벡호의 성적은 3승 2무 2패가 됐다. 그동안 약체 대만에만 2승을 거두었던 쑥스러운 성적표를 개선한 한판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1위인 한국은 7일 영국 런던 크레이븐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랭킹 16위의 강호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이겼다. 이로써 역대 전적에서 한국은 1승 1무로 그리스를 앞섰다.
한국은 경기 전반 강한 압박전술을 구사하는 그리스에 밀려 다소 고전했으나 빠른 템포로 맞섰고 후반 들어 선수들의 다양한 포지션 이동을 실험하며 경기를 이끌어 갔다. 한국은 후반 33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이끌어 낸 프리킥을 이천수(울산 현대·사진)가 왼쪽 구석으로 날카롭게 차 넣어 승리했다.
그리스는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에 나서던 기존 스타일을 버리고 큰 체격을 이용한 고공 플레이와 거친 압박전술을 구사하며 초반부터 한국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한국은 응원단 9000여 명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기동력으로 맞섰다.
축구해설가 신문선 씨는 “한국 선수들이 스피드와 민첩성으로 경기를 우리 페이스로 끌고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계를 맡았던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그리스는 강한 팀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원정 경기의 부담이 있었을 텐데 좋은 결과를 냈다. 골키퍼 김용대(성남 일화)의 활약과 후반 들어 설기현(레딩 FC)을 측면에서 중앙 공격수로 배치하는 등 전술 변화를 시도한 것이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베어벡 감독은 4-3-3 포메이션을 가동하며 조재진(시미즈)에 이어 설기현을 중앙 공격수로 번갈아 써보는 실험을 했다. 박지성과 이천수를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측면 공격수로 자리를 바꿔 뛰게 하는 등 여러 조합을 실험하며 전술의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미드필더와 공격수 간의 볼 연결이 잘되지 않은 것과 수비 조직력이 떨어져 여러 차례 실점 위기를 맞은 것은 보강해야 할 점으로 꼽혔다. 또한 포백 수비수 가운데 좌우 양쪽의 측면 수비수는 가끔 공격을 거들기도 하지만 이날은 수비에 치중하느라 공격 가담이 적었다.
베어벡 감독은 “거친 경기였고 몸싸움이 치열했다. 이런 경기에서 이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아시안컵(7월) 우승이 목표”라고 말했다.
8일 귀국하는 한국축구대표팀은 다음 달 24일경 남미의 국가대표팀 중 한 팀을 선정해 국내에서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독기품은 창’ 이천수 “프리미어리그 재도전”
‘신들린 방패’ 김용대 “대표GK 경쟁 재점화”
‘창과 방패.’
7일 공수에서 빛난 선수는 이천수(26)와 김용대(28·사진)였다. 이천수는 창이었고 김용대는 방패였다.
이천수는 후반 33분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천수는 올 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알아보느라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운동을 많이 못했다. 프리미어리그로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너무 힘들었다. 나에게 프리미어리그는 어울리지 않는 곳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대표팀 훈련이 유달리 힘든 이유였다. 하지만 좋은 결과로 끝났고 내가 활약할 수 있었기에 기쁘다. 7월에 다시 도전하겠다. 오늘 활약이 나를 프리미어리그와 가깝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용대는 2005년 2월 이집트전 이후 2년 만에 A매치에 출전했다. 침착함과 유연성은 돋보이지만 과감성이 뒤진다는 이유로 이운재(34·수원 삼성)와 김영광(24·울산 현대)에게 국가대표팀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이날은 신들린 듯한 방어력을 보여 주었다. 전반 26분 그리스의 게르기오스 아나톨라키스가 날린 헤딩슛을 잡았다. 36분 문전 혼전 중에 터진 강슛도 막았다. 이때 튀어나온 공이 다시 그리스 선수의 발끝에 걸려 실점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맞았다. 김용대는 넘어진 상태에서도 손으로 공을 쳐내는 놀라운 순발력을 보여 줬다. 후반 11분과 인저리 타임에도 골과 다름없는 슈팅을 막아 냈다.
김용대는 “실수하지 말자는 생각만 하며 경기에 임했다. 대표팀에서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것이다. 영광이와 벌이는 대표팀 주전 경쟁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