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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ravel]소리없이 찾아간 CR-V… 해변은 겨울잠에 빠져

입력 | 2007-02-05 03:00:00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게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호 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혼다 CR-V와 충남 태안 해안사구여행

경북 봉화군의 청량산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청량사의 찻집 안심당에 걸려 있던 시구다.

창호지로 만든 등롱 안에 마분지를 잘라 만든 말(馬) 인형을 철사로 세워 빙글빙글 돌리면 그 말 그림자가 찻집 실내의 벽을 따라 달리던 주마등(走馬燈).

이 시구와 주마등은 고적한 산속 청량사의 애틋한 모습과 함께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 바람.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 소리로, 부대낌으로 바람은 그 실체를 증명한다. 의심과 상념으로 가득 찬 인간.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 가운데 이렇듯 확연히 그 존재를 믿는 것, 과연 삼라만상 가운데 몇 개나 될 것인지. 그런 바람이 소리를 만난다 함은 이 절간을 찾는 이에게 화두로 다가와 평생친구가 된다.

뜬금없이 꺼낸 바람 이야기. 그 단초는 오늘 내 발이 되어 충남 태안군 바닷가 신두리 사구로 데려다 준 혼다의 새로 나온 CR-V다.

미국 네바다 주의 사막을 자동차로 달릴 때다. 한겨울 모하비 사막의 광풍은 모래먼지와 함께 일어난다. 얼마나 센지 저 멀리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한 거대한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가 뿌연 모래먼지에 가려 일순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다. 그런 바람 속을 당시 나는 혼다의 어코드로 달렸다. 그러면서 느낀 것. 바람을 이기는 공기저항이었다. 평소 타던 1989년형 플리머스의 보이저(배기량 2L 터보 미니밴)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사막에서 자동차가 바람을 만나면 곳곳에서 소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당시 어코드는 바람 가르는 소리만 냈다. 공기저항도 크지 않았다. 액셀러레이터의 감응만으로 그 저항은 쉽게 가늠되니까.

이후 혼다의 핸들을 다시 잡은 것이 10년 만인 오늘. 모하비 사막의 모래광풍을 함께 이겨냈다는 알량한 인연이 혼다와 나를 이어 준 인연의 고리 전부지만 그래도 내게 혼다는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특히 CR-V(구형)는 1년 2개월 전 차를 바꾸려 할 때 구입대상 물목에 올랐던 것이기도 했고.

새 CR-V는 외관이 2년 전의 구형과 딴판이다. 둔중한 사각의 몸체는 추락하는 공기방울 모양의 에어로다이내믹 형으로 환골탈태했다. 옆쪽의 윈도라인은 박스 형의 뒷몸체에서 홀로 날렵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범퍼 쪽으로 낙하하는 품이 스포츠쿠페의 이미지를 살렸다. 날렵하게 보이려는 가시적 효과. 그런대로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 새 CR-V가 나를 다시 한번 끌리게 했다. 세단인 어코드2.4에 실린 직렬4기통 2.4L 엔진을 탑재한 것이다. 출력도 10마력 더 높였으니 차체 중량이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 해도 어느 만큼은 커버가 될 것이다. 새 CR-V는 SUV지만 좀 다른 점이 있다. 차고가 낮다. 30mm인데 시트에 앉으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한다. 그럼에도 전방 시야는 대형스크린 TV처럼 시원하다. 차 높이를 낮춘 만큼 생긴 공간이 실내에 흡수된 덕분이다. 차고도 낮고 정숙한 엔진을 실은 이 차. 모양은 SUV지만 주행성은 세단의 느낌이다. 주행해 보니 실제로도 그렇다.

아침 6시. 깜깜한 첫새벽인데도 서해안고속도로는 여전히 붐빈다. 막힘은 없지만 도로는 온통 바쁘게 질주하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 나라가 제 아무리 어지러워도 세상천지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만방에 날리는 그 저력. 앞만 보고 제 할 일 다하는 근면한 이 사람들 덕분이리라.

도착한 곳은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 사막이 그리우면 늘 찾는 곳이다. 오전 8시 30분. 동쪽에서 뜬 해가 이제 막 산을 넘어 그 빛을 직접 사구의 모래 등성이로 비추기 시작했다. 물 나간 해변은 거대한 광장을 연상케 한다. 그 끝에서 하얀 파도가 인다. 가족여행에 나선 이들이 해변에서 차를 몬다. 해변은 차량통행을 금하지만 여행자에게만큼은 잠깐씩 눈감아 준다고 사구 관리초소의 안내인은 말한다.

사구는 조류와 바람의 소산. 바닷물이 끌어온 모래는 파도의 힘으로 해변에 쌓이고 그 모래는 다시 바람에 실려 둔덕 너머 거대한 모래땅을 이룬다. 그런 사구가 충남 해안에는 비일비재하다. 어느 해변에 들어서도 송림 뒤로는 모래땅이다. 신두리 것이 가장 잘 발달하고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주변 풍광이 좋아 이름 난 것일 뿐. 신두리 사구는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초여름이면 사구를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던 풀. 지금은 모래 빛깔처럼 누렇다. 모래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이 억척스러운 생명들. 그 틈새서 예쁜 분홍빛 꽃 피우던 해당화도 지금은 모두 겨울 속에 침잠 중이다. 사막은 죽은 땅이 아니다. 게서 도마뱀이 살고 거북이가 산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며 번식도 한다. 사구도 같다. 바람이 다독이며 거친 모래땅에 사는 모든 생명을 돕는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그 어디보다도 생명의 숨결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구인들 다를까.

■ 신두리 사구

△찾아가기=서해안고속도로∼서산 나들목∼국도 32호선∼서산∼태안∼지방도 603호선(학암포 방향)∼반계 삼거리∼지방도 634호선∼닷개 삼거리∼신두리 해수욕장

△사구 트레킹=해변 뒤편 언덕 위 펜션 마을의 공터에 주차한 뒤 걸어서 돌아본다. 입구의 관리초소에서 차량통행을 막고 있다. 운동화나 등산화 필요. 입장은 무료.

태안=조성하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 태안의 숨은 맛 ‘우럭젓국’

국도 아닌것이 찌개도 아닌것이

담백하면서 시원… ‘해장용 OK’

태안은 음식천국이다. 사시사철 바다와 땅에서 온갖 먹을 것이 쉼 없이 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굴이 제철. 태안 사람들은 딴 굴을 손으로 꼭 짜 물기만 제거한 뒤 그냥 먹거나 소금에 찍어 먹는다.

이 겨울, 태안을 찾았다면 ‘우럭젓국’(사진)을 맛보도록. 태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 기막힌 음식이다. 그 맛을 보러 토속식당인 ‘토담집’(주인 윤순철)에 들렀다. 이 곳은 30년 동안 태안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을 내어 이름난 집. 게장과 함께 우럭젓국도 내는데 이것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우럭젓국을 찾는 이는 지역주민뿐이다.

우럭젓국은 국과 찌개의 중간쯤 된다. 그 자리에서 큰 냄비에 끓여 먹는데 그 모양이나 방식이 황태국과 같다. 우럭은 봄에 잡은 큰 놈을 소금물에 절여 말려 두었다가 쓴다. 찜통에 넣고 푹 고아 국물을 내 두었다가 손님상에 낼 때 우럭을 잘게 찢어 국물과 함께 냄비에 담는다. 두부 대파 청양고추를 넣고 팔팔 끓인다.

그 맛. 구수하고 담백하면서도 깊고 은근한데 먹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니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다. 알아둘 것은 우럭을 고아 쌀뜨물로 국물을 내는데 거기에 태안 특산인 육쪽마늘을 듬뿍 넣는다는 것. 태안의 바다와 땅이 모두 그 안에 담긴다. 1인분에 9000원. 위치는 태안등기소 건너편. 꽃게장(택배 가능) 역시 맛이 일품이다. 041-674-4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