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를 그린 TV드라마는 한결같이 태양을 배경으로 한 세발까마귀(삼족오)를 고구려의 상징으로 등장시킨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중국 화상석과 고분벽화'(솔)를 읽어보면 삼족오는 중국 장의(葬儀)미술품 중 하나인 화상석(畵像石)에도 무수히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상석은 석공과 화공이 한 팀을 이뤄 그림을 그려 넣은 장식 돌조각. 주로 한대(기원전 202년~기원후 220년) 귀족들의 무덤 장식용으로 각광을 받았다.
인용화상석만 1000여점에 이르는 이 국내 최초의 화상석 연구서의 저자는 고구려 고분벽화 전문가로 손꼽히는 전호태 울산대 교수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원류는 한대 화상석에 있습니다. 삼족오 뿐 아니라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의 사신(四神)처럼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도교적 요소는 대부분 화상석에 등장하는 것들입니다."
24일 동아일보사에서 만난 전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창의성을 강조해온 그답지 않게 의표를 찌르는 말부터 꺼냈다
"화상석은 영생불사의 신선사상이 담긴 장의예술품입니다. 불사의 약을 지녔다는 서왕모가 음양의 조화와 순환으로 이뤄진 우주적 질서의 주관자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세계관의 산물입니다. 여기서 음의 기운을 상징하는 달은 토끼와 두꺼비로, 양의 기운을 상징하는 해는 삼족오와 구미호로 형상화됩니다. 또 좌청룡 우백호의 구도는 6500년 된 중국 앙소문화의 신석기 무덤에서부터 발견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요 모티프들이 독창적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니…. 전 교수는 고구려벽화의 가치는 한대 화상석과 비교했을 때 거꾸로 그 독창성을 추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구려 문화의 특징은 '문화교류에 대한 열린 자세와 창의적 재창조'에 있습니다. 한대 화상석에서 삼족오는 대부분 오리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고구려 벽화에선 화려한 주작의 형상으로 재창조됩니다. 사신 역시 화상석에선 부수적 장식동물에 불과하지만 고구려 벽화에선 우주적 신수(神獸)라는 독자성을 갖게됩니다."
전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한대 화상석에서 출발한 도교적 아이디어가 가장 완성된 형태로 이미지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980년대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시절부터 중국자료관를 뒤지며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는 "중국 것을 잘 알수록 우리 것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라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대응도 결국은 한국과 중국 고대문화를 얼마나 깊이 있게 비교분석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점에서 우리 학계의 긴 호흡과 장기적 안목이 아쉽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