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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바다’된 인혁당 무죄 선고 법정

입력 | 2007-01-23 14:55:00


1975년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인혁당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지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도예종, 여정남 씨.

이들 8명이 23일 서울중앙지법의 재심판결을 통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우선 늦었지만 당사자들과 유족의 명예가 회복됐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어느 정도 예상된 판결=이번 판결은 2002년 12월 유족들이 청구한 재심을 2005년 12월 법원이 받아들인 지 약 1년 만에 나왔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발표했고,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도 "인혁당 사건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 "이라고 밝힌 적이 있어 이날 무죄 선고는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유신정권에 반대해 민주화운동을 하다 국가 전복 세력으로 몰려 위법한 수사와 재판의 희생양이 됐던 이들에게 뒤늦게나마 명예를 되찾아 준 의미 있는 판결이다. 사법부는 이번 판결로 당시 국민들로부터 '사법살인'이라는 지탄까지 받았던 오명을 씻어 낼 수 있게 됐다.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등은 판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32년간 피눈물로 살아온 유족들의 끈질긴 싸움의 승리이자 인권의 승리"라며 "민주주의 사법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준 재판부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간첩 조작 사건 등 유사 재심청구 잇따를 듯=이번 판결로 과거 내란음모 및 간첩 조작사건 등과 관련된 재심청구 및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인혁당 재건위 재심 사건 변호를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는 이날 무죄판결이 나오자 "무죄 선고를 받은 8명의 사형수 말고도 인혁당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피고인 20여 명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200여 명에 대해서도 이달 안으로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가석방된 강희철 씨와 신군부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탄압 실상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중형이 선고된 '아람회' 사건 관련자들이 낸 재심청구는 지난해 6월과 7월 각각 제주지법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미 받아들여져 심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사형선고가 잘못됐다"고 밝힌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 등 과거 사법부의 판결 오류가 드러난 사건들의 재심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족들, 회한과 기쁨의 눈물 쏟아=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 8명의 유족들은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진 데 대한 기쁨과 그동안 쌓아온 억울함이 교차된 듯 일제히 눈물을 쏟았다.

고(故) 하재완 씨의 아내 이영교 씨는 "오늘 재판을 통해 억울함을 풀려 기쁘지만 왜 죽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눈을 감은 남편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무너진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 우홍선 씨의 아내 강순희 씨도 "공산주의자의 아내로 억눌려 지내온 살아온 삶도 억울했지만 유족들의 말을 외면한 국가가 더 원망스러웠다"며 "오늘에서라도 진실이 가려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고 송상진 씨의 아내 김진생 씨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생각을 단 하루도 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주위에서 모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손가락질 할 때도 꼭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며 울먹였다.

이종석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