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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속의 별]정세진 아나운서가 꼭 만나고 싶었던 가수 심수봉

입력 | 2007-01-20 03:01:00

‘행복’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정세진 아나운서(왼쪽)와 가수 심수봉 씨.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두 사람은 일, 여성, 자유 등 공통된 관심사를 통해 금세 친해졌다. 홍진환 기자


1976년에 지은 집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의 머릿속에는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생생히 담긴 한 컷의 사진이 남아 있다.

어둑한 저녁, 창가 옆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사랑한다 말할까 좋아한다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말 못 해 나는 여자이니까’를 진지하게 들으시던 모습.

낡은 레코드 기계 사이로 흘러나오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심, 수, 봉’.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몇 장의 레코드판 중에는 그가 남아 있다. 통통한 볼에서 묻어나는 청순함. 그러나 그의 눈빛은 달랐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깊은 눈. 세상의 모든 슬픔을 빨아들일 듯한 눈망울.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은 걸까.

그의 노래엔 늘 여자가 있다. 떠나는 남자가 있다. 왜 여자는 있고 남자는 떠나는가. 별리(別離)는 숙명이다. 어렵게 다가갔지만 결국은 다시 멀어지고 마는 소통하기 힘든 세상과의 불편한 인연이 남자와의 별리와 중첩돼 한(恨)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듯.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개여울’) ‘하루하루 바다만 바라보다 눈물지으며 힘없이 돌아오네’(‘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 마음 애태우나요’(‘당신은 누구시길래’) ‘오래전에 너는 내 곁을 떠나갔는데’(‘후회’)….

그가 쓴 노랫말은 변주된 소월의 ‘진달래꽃’이다. 왜 그리 철저히 비관적이었을까. 그의 곡에 흐르는 멜랑콜리란…. 너무나 여성적인 그의 가냘픈 노래가 왜 남성들의 심금까지 울렸을까.

그도 30대에는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밖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한몸에 받는 신데렐라 같은 삶이지만 남모르게 외롭고 지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눈빛을 만든 그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정세진=선생님 삶을 돌이켜 보면 삶이 고달팠을 때도 많았을 것 같아요.

▽심수봉=어렸을 때 항상 외로웠고 진지했고, 심각했고, 인생이 뭔가, 나는 누구인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죠. 심령이 가난했던 거죠. 그런데 심령이 가난한 자 복이 있나니. 그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난이 그냥 있었던 게 아니었던 거예요. 하느님을 알게 되고, 최근엔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어요. 내 존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고달팠던 순간들이 고달픈 게 아니었다는 것을.

▽정=(책 제목을 듣고 반가운 얼굴로) 저도 그 책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이제 30대 중반이 되니까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아지는 걸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50대에 선생님 스스로 돌아보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심=사실 난 항상 외로웠던 것 같아요. 모든 게 심각했고 순간순간이 진지했으니까. 그런데 이젠 모든 게 참 좋아요. 그전에는 수동적으로 ‘살아진’ 거지만 요즘은 오히려 죽음을 맞을 준비도 해 가고 있는 걸. 50대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아요. (활짝 웃으며) 난 이제 정말 행복하거든요.

▽정=저도 선생님처럼 행복해지고 싶어 유학 결심을 하게 된 건데. 참, 얼마 전 콘서트에서 민혜경 씨 ‘보고 싶은 얼굴’에 맞춰 춤도 추셨다고요.

▽심=춤을 잘 출 수 있는 DNA라는 게 있나 봐요. 우리 집이 3대째 국악인이라 그런 끼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관객들이 상상하는 나는 항상 ‘그때 그 사람’일 뿐이잖아요.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언젠가 한번은 리키 마틴 노래 틀어 놓고 남편이랑 춤을 춘 적도 있는데, 춤을 춘다는 그 과정 자체가 정말 즐거운 것 같지 않아요?

▽정=저는 ‘몸치’라서 잘은 못 추는데. 저도 선생님 나이 때는 남편과 그렇게 유쾌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남편 분과는 라디오에서 만나셨죠?

▽심=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만났죠. 그때 담당 PD였던 남편은 내가 워낙 진지하기만 하니까 양지로 끌어내려고 많이 신경을 써 줬어요. 담당 PD로서 DJ 관리를 한 거죠. (부끄러운 듯) 근데 사실은 제가 좀 착각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아, 안 되겠다’ 하고 나온 노래가 ‘비나리’예요. 친구들이 듣고서 가사가 너무 비관적이라기에, 좀 좋게 되는 쪽으로 바꿨더니 결국 결혼했잖아요.(웃음)

▽정=공인으로서 타인의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심=공인으로서 내 외양이 늙어 보이거나, 늘어져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 음악을 들으며 내 모습을 그릴 때 그림이 안 그려지면 안 되죠. 스타일상으로도 자유롭고 싶어요. 바람머리라도 관계 없죠.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2년 살다가 돌아오면서 자유로움을 선물로 가지고 돌아왔어요.

▽정=저도 다음 주말에 1년 연수를 위해서 맨해튼으로 떠나는데….

▽심=정말 최고죠! 아∼ 좋겠다. 참 자유로웠어요, 그때.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도 실컷 보고, 뉴저지에 살 때는 재즈스쿨도 다녔죠. 차를 렌트해서 뉴저지에서 맨해튼까지 혼자 몰고 다니기도 했어요.

▽정=실례지만 혹시 차갑다는 말 많이 듣지 않으세요? 저는 뉴스를 진행하다 보니까 어느덧 ‘밀랍인형’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더라고요.

▽심=까다롭다는 말, 오래 같이 있기 힘들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반문하게 돼요. 일을 편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C샤프 마이너예요. 연주하기 힘든 코드죠. 그래서 보통 C 마이너나 D 마이너로 연주하자고 하는데, 반음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내가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코드를 찾은 건데, 그래서 C샤프 마이너로 연주 안 해주면 안 부르겠다, 음악적 고집을 부리죠. 욕도 많이 먹었는데, 난 안일한 게 싫어요.

▽정=선생님은 행복의 물음표에 어떻게 대답하실 건가요?

▽심=결국 행복의 출발은 긍정에서 오는 것 같아요. 행복한 사람은 바이러스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파하죠. 행복이라는 건 결국 자기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 너무 거대한 꿈은 어쩌면 구름 같아요. 없어질 수 있으니까요. 세진 씨도 나도 (목소리에 힘을 주며) 우리 모두 행복해집시다.

▽정=제가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선생님이 행복해 보여서 너무 좋아요. 공부하러 떠나기 전에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참 행운인 것 같아요.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요. 앞으로 계속 좋은 공연 해 주실 거죠?

▽심=그럼요. 지금도 안에서 계속 타는데요, 열정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의 생각과 비슷한 궤적을 걸어온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를 만나면 힘을 얻을 것 같았다. 인터뷰를 끝내고 잔금이 많은 내 손을 보며 그는 공감의 미소를 지었다. 힘겨운 시간을 많이 겪겠지만, 잘 이겨 나갈 것이라는 긍정의 미소랄까. 40대에 나의 눈빛, 50대에 나의 미소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시간이 흐른다는 게 그리 싫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정세진 KBS 아나운서

■ 50대까지 생명력 잃지 않으니…

“어머, 정말이에요? 선생님께서 만나주신대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흥분에 들떠 있었다. KBS 9시 뉴스에서 보여 주었던 안정되고 정돈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었다. 심수봉 씨와의 만남이 있기 정확히 일주일 전 오후였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정세진 아나운서의 손에는 커다란 음반 하나가 들려 있었다. 1979년에 나온 낡은 레코드판. 흰 글씨로 ‘심수봉·여자이니까’가 진하게 박혀있었다.

“선생님, 참 뵙고 싶었습니다. 오늘 선생님 뵈러 간다니까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면서 이걸 건네주시더라고요.”

“어머나, 참 오래된 음반인데…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심 씨와의 만남에 정 아나운서는 대단히 열성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만남을 제의했을 때 심 씨의 매니저는 연말 스케줄 때문에 어렵다고 했고 1월에는 정 아나운서가 미국 연수를 가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인연은 그 정도로 그치나 보다 했다.

그러나 정 아나운서는 “출국 전날까지라도 연락이 오면 만나겠다”고 했다. 어지간한 열성이었다면 두 사람은 그냥 ‘가수’와 ‘아나운서’로만 서로에게 기억될 뻔했다.

처음 정 아나운서가 “심수봉 선생님을 뵙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기자는 조금 의아했다. 그는 ‘클래식 오디세이’ ‘저녁의 클래식’ 등을 진행하며 클래식통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심 선생님의 음악을 좋아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50대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최고의 위치에 서 계실 수 있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정 아나운서는 심 씨의 생명력을 흠모했다. 40대를 준비하겠다며 9시 뉴스 앵커에서 스스로 내려와 미국 유학을 결심한 그에게 50대의 ‘심수봉’은 특별한 존재인 듯했다.

만남 이후 통화에서 그는 심 씨의 행복한 모습과 자신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미국에 가면 이후의 나를 이끌어 줄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고 밝혔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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