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모 사립대 전직 교수 김명호 씨가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습격하는 데 사용한 석궁. 박영대 기자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가 판결 결과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가 쏜 석궁 화살에 맞아 부상하는 초유의 법관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15일 오후 6시 33분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55) 부장판사가 자택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 W아파트 1층 복도에서 서울의 모 사립대 전직 교수 김명호(50) 씨가 쏜 석궁 화살에 복부를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화살은 박 부장판사의 배꼽 왼쪽 아래에 2cm가량 깊이로 박혔으며 박 부장판사는 약간의 출혈 외에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김 씨는 아파트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 숨어 있다가 퇴근 뒤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박 부장판사에게 다가가 석궁을 쐈다.
김 씨는 박 부장판사의 비명을 들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김 씨는 모 사립대 조교수로 재직하던 중 동료 교수 비방, 연구 소홀 등을 이유로 1996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자 이 처분이 부당하다며 복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2005년 9월 1심에서 패소한 데 이어 12일 박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은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김 씨는 1995년 대학입시 본고사 채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학 문제 하나가 잘못 출제됐다”며 학교 측과 마찰을 빚은 뒤 재임용에서 탈락했다고 주장해 왔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항소를 기각한 이유가 뭐냐며 석궁을 보이면서 단순히 위협만 하려고 갔다”며 “박 부장판사와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석궁이 발사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장에서 붙잡힐 때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김 전 교수에게 살인미수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한편 대법원은 박 부장판사가 피습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오후 7시 반경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긴급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참으로 심각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며 “법치주의의 근간에 대한 도전으로 강력히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