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그의 유언은 알려진 바 없지만 아무래도 그는 몰래 이 말을 남겼던 것 같다. "나 계속 음반 낼래"라고.
래퍼 투팍(2pac)이 총에 맞아 사망한 것도 어느덧 10년 전 얘기지만 그는 지난달 21일 9번째 앨범 '팩스 라이프(Pac's life)'를 발매했다. "정말 죽긴 죽었을까?"라는 의심이 들만큼 그는 사후 10년 동안 정규 앨범 5장을 포함해 미공개 라이브, 리믹스 음반 등 13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곡 수로 따지면 265곡이나 된다. 1997년 발표된 'R U 스틸 다운'을 비롯, 2CD로 제작된 정규음반만 세 장이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 앨범만 '언틸 디 엔드 오브 타임'을 포함해 세 장이나 된다. 10년 전 생전 마지막 앨범 '올 아이즈 온 미'로 이미 힙합계의 거물이 됐지만 그는 무덤에서 스튜디오를 차린 듯 계속해서 신곡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있다", "미발표곡이 1만곡이 넘는다" 등 앨범 발매 때마다 나오는 루머들도 끝이 없다. 실체는 무엇일까?
① 선-후배와의 합작품(힙합 웹진 '힙합플레야'의 김용준 대표)=생전 '가녹음' 식으로 그가 남긴 랩을 프로듀서들이 리듬을 입혀 새롭게 리믹스한 형태다. 에미넴이나 스눕 독, 심지어 엘튼 존까지 수십 명의 선배 후배 뮤지션들이 참여해 컴필레이션 앨범 성격을 띤다. 물론 과거의 투팍 음악과 다소 '생뚱맞은' 곡도 있으나 근간은 투팍의 랩이고 투팍 앨범이 맞다.
② 숨결 약간만 담은, 돈벌이 수단(힙합음악 평론가 서옥선)=새로운 프로듀서, 새로운 뮤지션들로 인해 갈수록 그의 음악과 멀어지고 있다. 죽기 직전까지 그는 수많은 곡들을 작업했는데 지금의 신곡들은 그의 랩 일부분을 따와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와 섞는 식으로 발표됐다. 투 팍의 신곡이라기 보다 돈벌이에 급급한 음악인들의 상업 앨범 같다. 사후 진정한 투팍의 앨범은 1997년 발표된 'R U 스틸 다운'까지인 것 같다.
③ '가정'의 앨범(투팍 팬클럽 회원 김진호)=사후 10년 동안 그가 발표한 앨범은 "투팍이 살아있다면 이런 음악을 했을 거다"라는 것을 알려준 앨범이다. 물론 그는 죽었고 그가 남긴 랩의 일부분으로 노래를 만든 것이지만 후배 뮤지션들이 "지금 투팍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음악을…"이란 가정으로 그의 랩에 새 옷을 입힌 것이다. 어쩌면 천국에서 전화를 걸어 에미넴과 루다크리스 같은 후배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일 지도….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