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신동아 11월호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김성호 법무부장관)의 요약입니다. 전문은 신동아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경남 남해에서 농사를 짓던 소년(김성호)의 부친은 논밭을 팔아 부산에서 건축업을 시작했으나 참담하게 실패했다. 부모와 5남매는 부산 연제구 거제동 옹벽에 기대 지은 판잣집에서 살게 됐다. 과일상자에서 뜯어낸 판자로 바람과 햇볕을 가리고 지붕은 콜타르 칠을 한 루핑으로 덮었다. 집 한가운데로는 하수가 흘렀다.
공부를 잘하던 소년은 학교 친구들의 집을 옮겨다니며 입주(入住) 과외교사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졸합할 때 5개 학급 300명 중에서 수석을 했다. 부산에서는 당시 경남중과 부산중이 입학시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그는 부산중에 합격했다.
그런데 입학금 5300환(화폐개혁 이전)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입학금 액수를 기억하고 있다.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중학교 진학자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바로 아래 여동생은 남해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부산에서 공장에 다녔다. 그 여동생만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프다.
집 근처 교회에서 목사가 공민학교를 만들어 중학교 미진학자를 모아 가르쳤다. 두 학급이었다. 한 학급은 차고에서, 한 학급은 차고 옆 천막교실에서 공부했다. 차고 교실이 그래도 천막 교실 보다 나았다. 비가 오면 천막교실은 빗소리가 콩 볶는 소리처럼 요란하고, 교실에 물동이를 놓아 빗물을 받았다.
목사는 학생들에게 오뚝이 정신을 주입했다.
‘아무리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가 되라.’
‘칠천팔기(七顚八起)’
그가 고교 1학년때 ‘천막과 차고’ 학교가 브니엘 실업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정식인가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중학교 졸업장은 없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2학년이 되면서 대한민국 경제도 나아졌고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가 집을 한 채 지어 팔면서 형편이 피었다. 정규 중학교 진학도 못했던 그에게 대학 갈 운이 돌아왔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제 1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브니엘고 개교 이래 첫 사법시험 합격자였다. 그는 사회에 나와 성공한 후 브니엘고 학생 중 집안이 가난해 대학에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김성호 장관은 “공민학교 다닐 때 중학교 모자 쓴 아이들이 부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제가 키는 좀 작지만(주: 160cm 이하. 어려서 못 먹어 키가 작다고 함)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 하지 않았어요. 남의 집에 살면서도 그랬죠. 좋은 중학교 모자 쓴 이이들 보면 길고 짧은 거는 대봐야 안다는 생각을 했죠. 좋은 학교 다니는 친구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거든요.”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이 시대의 말과 생각
황호택 기자가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01월 01일
쪽수 : 359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476
비고 : 판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