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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영균]북핵이 고마운 경제부총리

입력 | 2006-10-23 03:03:00


“세계 경제가 불투명하고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합심 협력해 어려움을 극복합시다.”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 휩싸여 주가가 폭락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초조감으로 기업 활동이 극도로 위축됐다. 대통령이 나서서 호소했으나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터라 기업과 국민의 반응은 냉랭했다.

‘9·11테러’와 ‘10·9 북핵’의 공통점

북한의 ‘10·9 핵실험’ 이후의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5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석을 맞아 국민에게 던진 호소다. 그 뒤 정부는 “미국의 보복 전쟁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2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후 경기부양책이 잇달아 나왔다.

당시 경제는 지금처럼 어려웠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시중 경기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2001년 경제성장 전망치를 당초 4%에서 2%로 낮출 정도였고 외환위기 이후 지속됐던 경상수지 흑자 기조도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용호 게이트’를 비롯한 3대 게이트로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져 정권 말기의 레임덕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9·11테러’는 김대중 정권에 악재라기보다는 호재였다.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경제 불황의 책임을 떠넘길 수도 있고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구실도 되었다. 다행히 미국이 테러를 신속히 극복하고 신경제의 엔진을 살려낸 덕분인지, 부양책의 힘 때문인지 2002년 세계 경제는 급속히 회복 됐고 국내 경제도 살아났다. 집권여당은 그 덕분인지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5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적지만 대응 방식은 닮은꼴이다. 정책의 잘못으로 인한 불경기의 책임을 북한 핵실험에 떠넘기고 과감한 부양책을 쓰는 수순이 그렇다. 지금 돈을 풀면 2002년처럼 내년에 경기가 살아날 것이다. 다만 당시와는 달리 월드컵이 열리지 않는 게 유감이겠지만.

실제로 핵실험 이후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말이 달라졌다. 핵실험 이전에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맞지 않다”고 되풀이했던 그가 ‘사실상 불황’임을 인정하고 ‘재정 조기 집행’을 거론하고 있다. 돈을 풀겠다는 얘기다.

경제전문가들은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민간에서는 4% 성장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정부도 전망치를 낮출 듯하다. 하지만 증시 주변에서 나오는 전망은 이와 다르다. 증시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다소 밝게 보는 경향이 있다지만 5년 전 경험이 작용했는지 상당히 밝은 전망도 많다.

5년 전처럼 경기가 급상승할까

김대중 정권에 2002년의 경기가 중요했듯이 노무현 정권에도 2007년의 경제상황은 의미가 깊다. 선거에 맞춰 경기 사이클을 조절하려면 내년 한 해만 집중하면 된다. 만약 북의 핵실험이 없었다면 권 부총리에겐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컸으리라. ‘9·11테러’처럼 핵실험도 경제엔 호재다.

증시 주변의 얘기처럼 핵실험 덕분에 내년 경기는 극적으로 상승세를 탈 가능성도 있다. 투자하지 않고 놀기만 해도 우리 경제가 10년은 버틴다는 말도 있는데 내년 한 해 경기를 살리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경제관료가 아니다. 경기는 나아질 것이고 경제팀을 바꿀 가능성도 없으니 그야말로 ‘웰빙 경제팀’이다.

하지만 2002년과 2007년은 다른 점도 있다. 그건 우리 경제의 경쟁력과 잠재력이다. 최근 2년 동안 브라질과 인도가 우리 경제를 추월했고 러시아도 곧 우리를 제치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허송세월을 했다면 내년 경기가 반짝하더라도 내후년 이후엔 다시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더 긴 불황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