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괴물 슈렉의 모험과 사랑을 담은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슈렉’. 웃기고 신나고 재미난 이 영화엔 이상야릇한 구석이 있어요. 보고 나면 왠지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겁니다. 왜일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가 오랫동안 젖어 있던 상식과 고정관념의 견고한 벽을 이 영화가 사정없이 깨부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슈렉’은 아름답게만 보였던 동화 속 이야기들을 향해 ‘똥침’을 날립니다. 그러면서 동화 속에는 기실 얼마나 위험한 편견들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죠.》
[1] 스토리라인
슈렉은 늪지대에 사는 못생긴 괴물입니다. 그는 더러운 진흙으로 샤워를 하고 애벌레를 쥐어짠 치약으로 이빨을 닦으면서 혼자 안분지족(安分知足·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하는 삶을 살고 있죠. 어느 날 슈렉의 안식처인 늪은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피노키오, 아기돼지 삼형제, 피리 부는 소년과 같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떼로 몰려들어 왔기 때문이죠. 알고 보니, 그들은 파콰드 영주로부터 쫓겨나 늪지대까지 밀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화가 치민 슈렉은 당나귀 동키와 함께 파콰드 영주를 찾아갑니다. 파콰드는 “성에 갇힌 피오나 공주를 구해와 나와 결혼하게 해주면 조용한 삶을 되찾아주겠다”는 약속을 하죠. 이에 슈렉은 공주를 데려오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오릅니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공주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슈렉은 피오나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2] 더 깊게 생각하기
첫 장면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슈렉은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면서 동화책을 읽습니다. ‘옛날 옛적에 어여쁜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마법에 걸렸고 진실한 사랑의 입맞춤만이 마법을 풀 수 있었다. 공주가 갇힌 성은 입에서 불을 뿜는 무서운 용이 지키고 있었다’고 쓰인 동화책장을 북 찢은 슈렉은 이 책장으로 엉덩이를 닦습니다. 그러면서 툭 내뱉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믿을 걸 믿으라지.”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가 숱한 동화 속 이야기들을 전면 부정하고 비트는 신바람 나는 장난을 칠 거란 사실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익숙한 동화 속 내용을 ‘슈렉’이 신나게 조롱하고 있는 대목들을 살펴볼까요.
㉠외모=피오나 공주를 구출하고 결국엔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슈렉. 그는 이상하게도 여느 동화 속 왕자님들처럼 ‘얼짱’(얼굴이 잘생긴 자)이 아닙니다. 오히려 ‘얼꽝’(얼굴이 못생긴 자)이죠. 하지만 알고 보면, 흉측한 얼굴과는 반대로 슈렉의 마음은 그 어떤 잘생긴 왕자들보다 순수하고 따뜻합니다. 피오나 공주도 그래요. 그녀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는 연약한 미녀가 더 이상 아닙니다. 공중정지 이단옆차기를 날릴 정도로 터프하죠. 게다가 해가 지면 슈렉과 같은 흉측한 모습의 괴물로 변합니다. 모두 ‘남자주인공=왕자다=잘생겼다=정의롭다’ ‘여주인공=공주다=예쁘다=연약하다’는 통념 속 등식을 교묘하게 깨부수는 대목입니다.
㉡동기(motive)=보통 동화 속 왕자들이 목숨을 걸고 공주를 구출하려 하는 이유는 뭔가요? 악의 무리를 물리쳐 평화를 되찾고 공주를 마법에서 해방시키려는 원대하고 이타주의(利他主義)적인 목적에서입니다. 하지만 슈렉이 공주를 구출하는 이유는 뭔가요? 하루빨리 조용한 혼자만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슈렉은 영웅이 아닐 뿐 아니라, 지구를 구한다는 원대한 꿈조차 없죠. 그가 모험을 감수하는 건 극히 개인주의적인 까닭에서입니다.
㉢용(龍)=공주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용은 동화 속에선 어떤 모습들인가요? 불을 마구 뿜어내는 흉포한 악당 아니겠습니까? 이 영화 속 용은 다릅니다. 처음엔 위악(僞惡·나쁜 체함)적으로 굴지만, 알고 보면 사랑의 포로가 되는 감수성 예민하고 연약한 존재잖아요. 용은 당나귀 동키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슈렉 일행을 돕죠. 특히 이 용의 성별(性別)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허를 찔린 듯한 느낌까지 듭니다. 흉측한 용들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수컷(♂)’일 거라고 여러분은 생각했었죠? 하지만 ‘슈렉’의 용은 길고 예쁜 속눈썹을 자랑하는 ‘암컷(♀)’이랍니다. ‘포악함=남자’라는 통념 역시 ‘슈렉’은 시원하게 부숴버리죠.
[3] 뒤집어 생각하기
사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우리가 서정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전래(명작)동화들에는 적지 않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이 숨어 있습니다.
‘신데렐라’를 볼까요? 신데렐라처럼 수동적인 인물도 없습니다. 그녀는 ‘운 좋게’ 무도회에 갔다가 왕자의 눈에 들어 결국엔 결혼에 ‘골인’하잖아요? 신데렐라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보다는 그저 남자에 의해 ‘간택’된 것에 불과하죠. 외모 하나로 인생역전을 이루는 거니까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도 그래요. 왜 동화 속 공주들은 꼭 멋진 이웃나라 왕자의 키스를 받아야만 마법에서 깨어나는 거죠? 자기 스스로 일어날 순 없나요? 자기 스스로 마법을 풀 순 없는 걸까요? 공주들은 꼭 외모가 준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남자들에게 의존해야만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잖아요.
‘백설공주’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동화 속 계모는 악독하고 심술궂기만 하죠? TV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보세요. 여기선 계모가 친엄마보다 더 자녀들을 위하고 사랑하잖아요? 요즘처럼 이혼과 재혼, 그리고 대안가족이 많은 시대에 ‘계모=나쁜 여자’란 설정은 혈연(血緣)만을 고집하는 시대착오적인 편견이 아닐 수 없죠. 또 있어요. 왜 백설공주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 곁을 지켜 준 ‘키 작은’ 난쟁이들은 종처럼 부려먹고 ‘돈 많고 멋진’ 왕자와는 대번에 사랑에 빠지는 거죠? 이 역시 외모와 사회적 권력·계급에 대한 심각한 선입견이죠.
[4] 내 생각 말하기
비록 못생긴 괴물이지만, 자신의 외모를 전혀 바꾸지 않고서도 공주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참신한 이야기를 전해 준 ‘슈렉’. 그럼 지금부터 이 영화가 주는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우리가 수없이 보아 온 국내외 영화를 한번 떠올려 보기로 해요. 우리가 열광했던 액션영화, 눈물 흘렸던 멜로드라마, 감동받았던 판타지 영화에는 또 어떤 편견이 숨어 있을까요? 영화 속에 속속들이 스며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콕 집어내 보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기억하나요? 공주는 슈렉과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나눕니다. 보통 키스 직후 공주는 ‘짠’ 하고 마법이 풀리면서 아리따운 모습으로 되돌아오잖아요?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기대를 멋지게 배신하죠. 공주는 여전히 괴물의 외모로 남아 있으니까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잖아” 하고 당혹스러워하는 피오나 공주. 그녀에게 슈렉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아름다워.”
맞습니다. 외모와 계급과 돈과 권력이 갖는 통념, 그 단단한 껍데기를 녹여 버릴 수 있는 건 진실한 사랑뿐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