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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행정도시 건설 시작되는 연기군 ‘착잡한 추석’

입력 | 2006-10-09 02:59:00


《“동네 이야기라 조심스럽지만, 정말 야박함이 느껴지네요.” 추석인 6일 오후 행정복합도시 건설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 토지 보상과 주민 이주 계획으로 금융기관과 부동산중개업소, 장묘업체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요란한 간판만 거리를 지키고 있을 뿐 정작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난 설에는 20년 만에 출가한 딸이 친정을 찾고, 농촌이 싫다고 집을 나갔던 며느리도 3명이나 돌아와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한산하다.》

14년째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해 온 A 씨는 “보상금 지급이 90% 이상 이뤄졌고 가구마다 가족 간에 보상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론이 났기 때문에 집을 찾는 사람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반짝 효자’들이 고향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것.

설에는 A 씨 가게 인근 노래방 두 곳에 들어가려면 오전 2, 3시까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올해는 오후 11시도 되지 않아 모두 문을 닫았다.

최근 몇 년간 이 슈퍼마켓의 매출액 변화는 현지의 세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평상시 이 슈퍼마켓의 주말 하루 평균 매출액은 180만∼200만 원. 하지만 정부가 신행정수도 건설을 발표한 2003년 12월 이후 2, 3개월 동안은 500만 원을 넘어섰다.

토지보상금을 예상한 주민들의 씀씀이가 커졌고 고향을 찾은 이들이 선물을 사면서 매출이 크게 올라간 것.

하지만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이 나자 평상시보다 못한 매출이 계속되다가 지난해 11월 행정복합도시 합헌 결정이 나오자 다시 매출이 500만 원대로 뛰어올랐다.

보상금 지급이 시작된 올해 설 명절에도 매출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이번 추석에는 200만 원 안팎에 그쳤다.

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 관계자는 “설에는 재산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격한 목소리가 담장을 넘었고 일부는 재산분쟁이 소송으로 비화되기도 했지만 이번 추석에는 평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가 재산을 유지하고 있어야 효도도 받을 수 있는 세태라고 강조하면서 보상금을 금융기관 등에 예치할 것을 권유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중의 토지보상금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했다. 부안 임씨 후손 임헌경 씨는 “어른들은 보상금으로 다시 토지를 매입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젊은 층은 장학사업 등 유용한 데 쓰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7월 중심행정타운 착공으로 이곳에서 마지막 추석을 지내게 된 주민도 적지 않아 착잡함과 쓸쓸함은 더했다.

중심행정타운과 첫 마을, 장묘 지역 착공으로 연기군 남면 종촌, 방축, 송담, 송원, 고정리 782가구는 추석이 지나면 이주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

종촌리의 황모(58) 씨는 “84평의 토지보상금으로 1억여 원을 보상받았는데 주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그 돈으로는 행정도시나 주변에 농토는커녕 거처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충북 옥천군이나 영동군으로 이주 터를 구하러 다니는 처지가 처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가 만든 주민생계조합 조사에 따르면 1차 철거대상(184가구) 가운데 이미 11가구가 이주를 마쳤다.

하지만 지난달 30일과 이달 3일 열린 남면의 면민체육대회와 연세초등학교 총동문회는 “주민 대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붐볐다. 사실상 석별의 정을 나누는 행사였기 때문.

종촌리의 강선호 씨는 “명절을 앞두고 열린 향우회에서 ‘이제 명절 때 고향에서 모이기 어려운 만큼 모임 시기를 바꾸자’는 얘기가 나왔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