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잉∼우우웅∼.”
23일 오후 9시 홍콩 항. 중국 선전(深(수,천))으로 출항하는 한진해운 소속 베를린호(號)에 컨테이너가 쉼 없이 실리고 있었다.
5300TEU급 컨테이너선 베를린호는 길이 279m에 폭은 40.3m나 됐다. 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63빌딩 높이(249m)보다 더 긴 이 배를 움직이는 인원은 22명이었다.
배 외곽에 설치된 가파른 철제 계단을 밟고 선실에 들어가니 김창암(45) 선장과 김택용(49) 기관장 등이 출항 준비를 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 배에서 일하는 유일한 여성인 3등항해사 류정선(23·사진) 씨가 무전기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 경제 현장의 최전선에서
“계단 올라오느라 힘드셨죠. 화물이 꽉 차면 배가 내려가 높이가 낮아지는데 오늘은 짐이 덜 찬 데다 빈 컨테이너도 있어 배가 높이 떠 있습니다.” 항해 경력 21년인 김 선장이 인사를 건넸다.
홍콩을 출발해 선전, 일본 요코하마(橫濱), 미국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를 거쳐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보통 3교대로 일하지만 입출항 때는 전원 근무한다. 입출항 시간이 계속 늦춰져도 준비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을 꼬박 일하는 경우도 잦다.
항해사들은 고된 업무지만 경제 발전의 최전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에 힘든 줄 모른다.
“나라 간 물류는 99% 이상이 배를 통해 오갑니다. 경제가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우린 금방 알죠.”(김 선장)
●“한국경제 잘돼 화물 꽉 찼으면…”
컨테이너선에 실리는 제품은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수출하는 물품은 쌀, 비료, 철광석 등 원자재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 전자제품이 늘었어요.” 항해 경력 23년인 김 기관장은 그동안 우리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고 했다.
“짐을 빽빽이 실어 배가 쑥 낮아진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한국 경제가 쭉쭉 성장해 꽉 찬 화물이 활기차게 드나들었으면 좋겠어요.” 남중국해를 응시하던 김 기관장의 말이 와 닿았다.
● 올해 추석도 동료들을 가족 삼아
김 선장과 김 기관장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후 곧바로 배를 탔다. 당시 다른 기업보다 월급이 많은 데다 외국을 다닌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목포해양대를 졸업한 뒤 올해 1월 입사한 류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바다에서 일하는 순간만을 꿈꿔 왔다”면서 “배를 타고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바다를 일터로 삼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다.
“태풍에 휩쓸려 배가 45도 가까이 기울어지는데 방향을 잡는 조타기가 모두 고장 났습니다. 30분 이상 버티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가족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이제 마지막이구나’ 했는데 운 좋게 고쳤습니다.”(김 기관장)
통신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침몰 사고로 동료를 잃는 경우도 있었다. 1987년 2월에는 한진해운 소속 인천호가 태풍에 침몰해 승선자가 모두 사망했다.
김 선장은 “항해 중 인천호를 만나 ‘먼저 갑니다’하고 인사하던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24일 오전 7시 베를린호는 선전 항에 도착했다.
밤을 꼬박 새운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표정은 밝았다. 올해도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내지 못하고 바다 위에서 맞아야 하지만 서로를 가족 삼아 의지할 참이다. 이들은 “태평양 바다에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도 나름대로 낭만이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홍콩∼선전 간 남중국해 베를린호에서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