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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조급한 대화 피하길” 美 지한파 인사들 조언

입력 | 2006-09-13 03:01:00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고비로 여겨진다. 이번 만남에서도 양국 정상이 견해 차만 확인하고 헤어진다면 한미동맹은 더더욱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그룹 가운데서도 대북 포용정책의 강력한 지지자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연구소장과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정책연구센터장을 만나 정상회담에 부치는 얘기를 들어 봤다.》

●스타인버그 교수

―현재의 한미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미관계는 양국 모두에 매우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만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 같은 추세는 가까운 시일 내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무언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한미 동맹 관계는) 극도로 약해지면서 결국 소멸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자칫 양국 지도자의 인식 차이를 확인시켜 주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미동맹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물론 양국 모두 예전 지지자 그룹, 비정부기구(NGO), 노조 등의 반대에 직면해 있지만 두 대통령이 각각 여당은 물론 반대론자들에게도 한미 FTA를 호소하고 설득한다면 동맹의 소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정상회담에서 이뤄진다면 커다란 진전을 이루는 일이 될 것이다."

-한미 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원인은 무엇인가?

"한미관계의 '잠재적 실패'의 원인은 단지 북한 문제에만 있는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거세지고 세대구성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는 미국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일들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점점 밀접해지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동맹전략에도 문제가 있다. 미국이 이라크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에서 직면한 위기들은 주한미군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한미동맹과 주한 미지상군의 존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미 국방부내에 있는게 사실이다. 필리핀이나 태국을 보면 미군이 주둔하지 않지만 미국과 강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숫자, 구성, 주둔지역 등 모든게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태도인데 한미 모두 서로에 대한 태도가 변했다."

―한미 간의 대북 인식 차이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미국은 한국의 태도가 너무 순진(naive)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너무 호전적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은(unfortunate)' 발언을 많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북한 문제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은 말들을 했다. 양쪽 다 그랬다. 물론 나는 햇볕정책의 지지지다. 대북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체니 부통령이 그렇다. 하지만 상대방을 싫어한다해도 대화는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건데 그건 적절치 않은 태도다. 목표의 우선순위에 있어서도 한미 양국간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 미국에겐 중요도의 우선순위가 먼저 세계이고, 둘째 동북아, 셋째 한반도다. 하지만 한국에겐 그 순서가 한반도→ 동북아→ 세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관계가 겹치는 부분들이 많다. 그 부분들을 중시하고 집중해야 한다."

―양국 정부의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나?

"북한 위조지폐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문제는 10여 년 전부터 나왔는데 왜 지금 다시 불거졌는가? 조용히 해결을 시도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공개적으로 이슈를 만들면 된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먼저 공개적인 이슈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대립 모드'로 놓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반면 한국 정부는 미국을 매우 의심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기지를 폭격할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미국은 대북 군사행동을 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서울이 북한의 포격 사정권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와 타협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그러지 않는다. 그건 잘못이다. 하지만 한국이 종종 그러는 것처럼 북한에 대해 싫은 말을 안 하고 북한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잘못인 건 마찬가지다. 한미 모두에 문제가 있다."

―백악관이 노무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노 대통령은 한국 국민에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논리를 펴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미국과 부시 행정부에 대한 노 대통령의 그런 코멘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에도 'shoot from the hip'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노 대통령은 너무 조급히 너무 많은 걸 미리 생각하지 않고 얘기한다.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협상의 기본은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신중한 고려 없이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지도자 모두 그걸 못하고 있다. '악의 축'도 영어권 사람들에겐 근사하게 들리지만 실제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이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 리처드 부시“양국이 공유할 목표 명확히 정하라”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양국 관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을 풀어줘야 한다. 실무 관료들은 경제 이슈 등에 있어서 그 자체의 이해관계에 집착하기 때문에 더 큰 이해관계를 못 볼 수 있다. 정상 차원에서 양국의 관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결정을 해 줘야 한다. 예를 들어 FTA 협상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FTA가 약속대로 실현되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심적 이슈들이 결정되어야 한다. 양국간에는 이밖에도 많은 현안들이 걸려 있으며 서로의 인식에 차이가 있는 대목들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능력이 있다. 지난해 미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진지하고 솔직하게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자 부시 대통령은 중국 측의 견해를 진정으로 인정했다."

―"북한 미사일은 미국이나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노 대통령의 지난 주 헬싱키 발언은 미국과 분명한 시각차를 보여 줬는데….

"그 발언이 정상회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엔 군사적, 정치적 함의가 모두 있다. 해석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노 대통령은 정치적 함의를 강조했다고 본다. 물론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건설적인 방법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문제는 6자회담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인데 미사일 발사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미동맹을 평가한다면….

"20세기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국제시스템은 매우 복잡하고 모호해졌다. 20세기엔 적이 분명했다. 소련 중국 북한…. 하지만 지금은 안 그렇다. 양국 사이엔 적의 개념에 대해서도 동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매우 모호한 상황이다. 한미동맹의 목표가 뭔지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양국이 근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데 컨센서스를 이룰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20세기에 우리는 매우 성공적인 동맹을 이뤘고, 그것은 배당금을 남긴 성공적인 투자였다. 21세기 한미동맹의 목표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그 배당금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양국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 민주주의 세계주의 자유 같은 공동의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한미동맹의 과제를 든다면.

"단기적으로 한미동맹에서 가장 큰 이슈는 분명히 북한문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중국문제에 부딪칠 것이다. 동맹은 여러 형태다. 동맹들의 실질을 들여다보면 매우 다양한 형태가 있다. 미국은 상황 변화에 따라 동맹의 근본 가치와 프레임웍은 보전하면서도 양자관계내에서 동맹의 형태를 바꿔나가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 21세기 한미동맹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한 위협을 앞에 둔 밀접한 형태의 동맹이 양국의 이익이 아니라면, 프레임웍과 가치는 지키면서 보다 느슨한 형태의 동맹을 가질 권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공동 성명도 없고… 정식 회견도 없고…

한미정상회담‘약식’ 마무리

“공동성명 발표 없다. 정식 공동기자회견도 없다. (회담장 소파에서 진행하는) 약식 공동설명회는 한다. 두 정상이 각각 준비된 2∼3분 분량의 모두(冒頭)발언을 한다. 취재진의 질문? 글쎄…. 그건 회담 분위기를 봐서 두 정상의 회담장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안 할 수도 있다.”

14일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열린 양국 간 어떤 정상회담보다 두 정상의 견해를 직접 들을 기회가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은 이날 워싱턴 특파원단에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은 없다. 단, 1시간 회담의 말미에 공동취재단의 회담장 입장은 허용한다”고 통보했다. 결국 청와대와 백악관이 선정한 ‘질문 예정자’ 4명은 회담장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의기투합 여하에 따라 질문기회가 주어질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주미 대사관은 이런 합의에 따라 “한미 정상이 단합된 모습을 공개하는 수위가 낮다”는 비판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정상회담은 사전 약속이 현장에서 뒤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워싱턴 회담에선 양국이 ‘기자 질문은 안 받는다’고 사전 합의했지만 부시 대통령이 비상 대기하던 미국기자 2명에게 예상 밖으로 질문을 허용했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은 백악관이 형식 결정을 주도하는 탓에 대체로 한미 정상회담의 언론공개 장면이 ‘풍성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주도한 지난해 11월 경주 정상회담에서는 별도 기자회견장에서 청와대와 백악관 대변인이 사회를 보는 정식 공동회견을 진행했다.

당시 한국의 제안에 따라 두 대통령과 참모 10여 명이 넥타이를 풀고 회견장에 등장하는 등 ‘격의 없이 대화하는 한미 관계’를 보여주려는 ‘연출’이 시도된 바 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