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2030'이 나온 배경은?
정부가 30일 중장기 비전 보고서인 `비전 2030'을 발표한 것은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세계화 등의 문제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이 위기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절박감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국민 모두가 똑바로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전2030이 현실화하려면 재원마련을 위해 추가부담을 져야 하는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차기정권도 이를 적극 실천해야 한다.
더욱이 한국을 둘러싼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비전들이 실제로 현실화될지도 불투명하다.
◆비전 2030 왜 제시했나= 정부가 논란끝에 비전2030을 발표한 것은 더 이상 중장기 전략에 대한 논의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닥쳐오고 있는 위기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함께 해결방안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출산.고령화는 심각한 상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작년에 1.0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총인구는 2020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각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급격한 인구감소는 저성장을 초래하는 등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트리고 연금.의료보험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킨다.
양극화는 외환위기 이후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전체 가구에서 중위소득 50%이하인 가구의 비율인 상대빈곤율은 작년에 18.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2%(2000년기준) 보다 훨씬 높았다.
양극화 심화는 사회적 신분의 상승 기회를 박탈해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으로 분출될 수 있다. 게다가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성장을 가로막게 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더욱이 세계화와 정보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전세계 모든 국가가 단일시장으로 통합되고 있는 데다 중국.브라질.러시아.인도 등이 급성장하고 있어 세계 국가들은 이미 무한경쟁에 들어갔다. 한국이 이런 세계적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3류국가로 전락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종합적인 비전이 없었다= 한국이 이런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그동안 중장기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이나
비전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대책들은 현안 해결에 급급하거나
부분적이고 단편적 내용에 머물렀다.
이창호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은 "선진국들 대부분은 20¤30년의 장기비전을 갖고 있고 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도 중장기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고 전하고 "지금까지 한국은 고작 5년단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만드는데 머물렀다"고 말했다.
이런 중장기적인 종합 전략이 없다보니 합계출산율이 1.8%로 떨어졌는데도 한국은 출산을 막는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국민연금 문제는 90년대 후반부터 문제점이 분명히 노출됐는데도 논의만 무성하고 해결책은 없었다는 것이 기획처의 설명이다.
이제는 경제.사회.정치.문화를 종합한 제도혁신의 밑그림을 준비하고 더 늦기전에 1세대 앞을 내다보는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 국민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비전 2030의 골격은= 정부는 이번에 `함께 가는 희망한국'이라는 슬로건 성격의 비전을 내걸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하부 3대 목표로 △혁신적이고 활력있는 경제 △안전하고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안정되고 품격있는 국가를 제시했다.
이는 기술혁신과 인재양성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꾀하는 한편,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다양한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정치.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갈등과 대립이 합리적으로 해결되는 나라를 말한다.
정부는 이런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5대 전략으로 △성장동력 확충 △인적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사회적자본 확충 △능동적 세계화를 제시했다.
또 실천적인 과제로 서비스산업경쟁력강화, 학제개편, 방과후 활동확대, 국민연금개혁, 장애인복지 종합대책 수립, 공공기관지배구조개선, 국방개혁, 통일인프라구축 등 50개를 제시했다.
정부가 이번에 비전2030을 발표하면서 복지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는 노력을 기울인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번에 `선 성장, 후 복지'의 기존 패러다임을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으로 전환했다. 그동안 정부는 성장에 집중했으나 앞으로는 성장과 복지의 조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복지를 소비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전환했다. 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돼 저출산.저소비.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산적한 문제들= 정부의 이런 계획이 현실화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부족한 1100조원을 마련하는데 국민적 동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여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이런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는데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고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남북통일, 안보상황 변화, 세계화 급진전 등 변수들이 너무 많으며 △다음 정권들의 철학에 따라 중장기적 방향이 완전히 틀어질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열린우리당은 국민 복지를 위한 지출은 선호하지만 세금을 추가로 걷는 데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5.31선거에서 참패한 이유중의 하나는 한나라당의 증세논쟁 전략에 휘말린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새 정부 출범이후에 내놓아도 될 중장기 비전을 굳이 대선을 앞두고 발표할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이 여권내에 적지 않다.
재정경제부는 중장기 재정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오랫동안 `중장기조세개혁안'을 준비해 지난 6월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공론화도 못해보고 접어놓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비전 2030의 내용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규제완화 등을 통해 민간부문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하고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려면 감세를 생각해야 하며 △증세가 필요하다면 현 정권부터 시작해야지 다음 정권에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