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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세상 뜨면…” 文人들의 미리 쓴 유언장

입력 | 2006-07-26 03:06:00


“네가 아주 어려서 너를 낳아 준 네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에 네게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사랑과 행복을 안겨 주지 못한 점이 늘 미안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접시꽃 당신’의 망부가가 새삼 떠오르는 대목이다. 결혼 2년 만에 아내를 잃었던 도종환(52) 시인이 아들에게 보내는 가상 유언장의 일부다.

수필가 피천득(96) 옹은 “그랜드 올드 맨(老大家)은 못 되더라도 졸리 올드 맨(好好翁)이 되겠다”는 의욕을 보이면서도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 지어 주는 것이 바람”이라고 유언한다. “새해에는 잠을 못 자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도록 노력하겠다…한 젊은 여인의 애인이 되는 것만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문인 101명이 미리 쓴 유언장을 묶은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경덕출판사)에는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유언이 적잖다.

이해인(61) 수녀는 “나의 관 위에 꽃 대신 시집 한 권을 올려놓으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다. “책들은 도서실로 보내면 되고 일기장들은 태우기 아까우면 부분적으로 출판을 하고 그 밖의 자질구레한 것들과 옷가지들은 태울 건 태우고…” 침착한 성품을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다.

소설가 공선옥(42) 씨는 큰딸에게 “나 없으면 이제부터 네가 부모다”라고 엄격하게 말한다. 공 씨는 이어 “114에라도 물어 제일 가까운 화장장으로 가서 화장을 시키고, 집 안 청소 깨끗이 하고, 몇 가지 나물과 밥과 국과 물 한 그릇을 엄마를 위해 딱 한 번만 차려 달라”고 자식들에게 부탁한다. “엄마가 죽었다고 절대로 상심하지 말고 잘 먹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소설가 하성란(39) 씨도 딸에게 “엄마 품에 쏙 들어오는 아기로 남아 있길 바랐는데,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친구들과 백화점에 갔다 왔다는 얘길 했을 때 조금 쓸쓸했어”라고 애틋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소설가 한말숙(75) 씨는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 된다”는 구체적 유언을 남겼다. 그의 남편은 가야금 명인 황병기 씨다. 소설가 전상국(66) 씨는 특별히 자신이 쓴 소설들에 글을 보냈다. “항상 나보다 앞서 있는 내 독자들을 내가 얼마나 두려워했는가를 너희들이 증언해 주기를 부탁한다.”

작고한 문인들이 세상 떠나기 전에 써 놓은 글도 눈길을 끈다. 구상 시인은 “오늘에서부터 영원을 살자”고, 이형기 시인은 “무소유 한마디밖에 쓸 것이 없다”고 유언을 남겼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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