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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옷가게 주인 “한달 유지비 200만원도 못건져”

입력 | 2006-07-24 03:03:00

썰렁한 상가23일 부산 서면지하상가.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원가 세일’ ‘균일가 판매’ ‘재고 정리’ 등을 내붙인 점포가 늘고 있지만 손님은 더 줄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문닫은 점포광주 동구 금남로 변에 매물로 나온 한 점포. 광주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요즘 금남로 부근 상가의 상당수가 매물로 나와 있으며 권리금을 요구하는 곳은 드물다”고 전했다. 광주=나성엽 기자


《본보는 이달 중순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불황을 취재한 ‘자영업자 한숨을 팝니다’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본보 11일자 A1·B1면 참조

이 기사가 나간 뒤 동아일보 편집국에는 전국 각 지역에서 “우리의 어려움을 정말 생생하게 전달해 줬다”는 자영업자들의 연락이 잇따랐다. 퇴직을 앞둔 많은 직장인도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공감했다. 특히 영남 호남 충청 강원 제주 등 지방에서는 “그나마 서울 등 수도권은 낫다. 지방의 실태를 한번 취재해 보도해 달라”는 제보가 줄을 이었다.

본보는 눈물 어린, 때론 분노마저 섞인 전국 자영업자들의 위기 실태를 추가 취재해 두 차례에 걸쳐 시리즈로 보도한다. 이를 위해 5명의 기자로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청주 등 전국 각 지역을 직접 다니며 자영업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17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교차로 서면지하상가. 이곳 324개 점포 중 절반은 매물로 나와 있었다. 장사를 포기하고 비어 있는 점포도 수십 개나 됐다.

바로 옆 대현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하는 신옥기(55·여) 씨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오늘 가게 문 열고 오후 4시까지 1만 원짜리 티셔츠 딱 한 장 팔았다. 임차료 전기료 등 한 달 유지비용 200만 원을 건지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내수시장이 빠르게 꺼져 가면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수도권과 지방 자영업자들은 “과장이 아니라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숯불 돼지고기 가게를 하는 이모(47·여) 씨는 작년 9월 시작한 식당의 하루 매출이 최근 개업 당시의 절반 수준인 50만 원으로 떨어져 밤잠을 설친다.

이 씨는 “공무원인 남편의 퇴직이 얼마 안 남아 생활비라도 벌어 보겠다고 은행에서 1억5000만 원 빌려 식당을 차렸는데 요즘 수입으로는 이자 갚기도 빠듯하다”고 털어놓았다.

경기 의왕시 내손동 G상가.

이곳에서 호황을 누리는 곳은 간판업소뿐이란 말도 나온다. 올해 들어서만 G상가 내 점포 89개 중 16개가 간판을 바꿔 달았다.

21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역까지의 상가 밀집지역. 거리는 젊은이들로 붐볐지만 상당수 점포에 손님은 거의 없고 점원들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는 노윤희(30·여) 씨는 “요즘 이곳에서는 ‘오늘 개시했어요?’라는 말이 인사말”이라며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점포를 다시 내놓는 곳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 “수도권은 그나마 낫다” 지방 상인들의 하소연

‘3층 62평, 학원시설 완료, 시설비 없음, 즉시 입주 가능.’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의 한 빌딩에는 이런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4개월째 걸려 있다. 인근 해오름부동산 관계자는 “이 학원은 창업한 지 8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며 “권리금은 고사하고 시설비까지 안 받겠다고 하는데도 문의전화조차 없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청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성안길’. 오후 7시면 인파가 많이 몰릴 시간인데도 한가한 모습이었다. 큰길가 점포 10개 중 1∼2개, 뒷길 2층 점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대구 최대 상권(商圈)인 중구 동성로 일대도 형편은 비슷했다.

동성로에서 4년째 분식집을 하는 전모(45·여) 씨는 “예전엔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며 포장마차로 간다”며 “가게를 접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분식집 근처 한 상설할인 옷 판매장은 올해 들어서만 4번째 간판이 바뀐 곳인데, 다음 달이면 나이키 매장으로 또 교체된다.

광주에서 만난 개인택시 운전사 장모(58) 씨는 버스 운전을 하다가 1998년 택시로 바꾸었다. 그는 “요즘엔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연료비 빼고 하루 2만∼3만 원 벌기가 쉽지 않다”며 “고정적으로 월급 150만 원을 타던 버스 운전사 시절이 그립다”고 말했다.

부산 서면교차로에서 1997년부터 구두 가게를 하고 있는 김영미(44·여) 씨는 “작년보다 올해 매출이 30%가량 줄었다”며 “장사를 시작한 이래 올해가 최악”이라고 했다.

대현지하상가를 주로 중개하는 Y중개업소 배모(53) 사장은 “월세를 제대로 못 내 점포 주인과 임차 상인이 법적 소송을 벌이는 일이 최근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자영업자 실질소득 감소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 엄살만은 아니다. 각종 자영업 통계에서 자영업자의 소득이 감소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국민소득에서 임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은 1999년 59.6%에서 2005년 60.4%로 약간 늘었다.

반면 임금소득에 자영업자 소득을 반영한 ‘조정노동소득분배율’은 같은 기간 81.1%에서 73.5%로 뚝 떨어졌다. 임금소득자의 소득은 늘어난 반면 자영업자 소득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의미다.

자영업자들 스스로도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소상공인진흥원이 전국 소상공인 990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실사지수(BSI)에 따르면 7월 예상경기 BSI가 92.9로 6월(99.0)보다 6.1포인트나 떨어졌다.

BSI는 100을 넘으면 경기 호전을, 100 미만이면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뜻이다.

○ 자영업 위기 후유증 심각

자영업의 위기는 극빈층을 양산해 사회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2004년 한국 가구와 개인의 경제 활동’에 따르면 세금 등을 뺀 실질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자영업주가 37.2%였다.

2004년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가 105만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자영업자 10명 중 4명가량은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한다는 얘기다.

국회 예산정책처 김기승 경제정책분석팀장은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경기 침체로 기업에서 밀려난 뒤 창업을 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서비스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이런 자영업자들은 빈민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의 연쇄 부도는 창업자금을 빌려준 은행에도 적잖은 충격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표적 자영업종인 숙박업과 음식업의 부실여신비율은 2000년 1.7%에서 작년 말 현재 4.1%로 2.4배 증가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책임연구원은 “개인사업자 대출금은 2004년 6월 말 현재 90조2000억 원이며, 올해 들어서도 자영업자 대출로 추정되는 중소기업 및 가계대출이 매달 수조 원씩 늘고 있다”며 “자영업자 위기는 금융회사에 치명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자영업자 617만명…전체 취업자 27% 차지

‘작년 말 현재 전체 취업자 10명 가운데 3명은 자영업자.’

23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자영업 진출 결정요인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말 현재 국내 자영업자는 617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2285만6000명)의 27%를 차지했다. 하지만 월급을 받지 않고 가게 일을 거드는 가족을 합쳐 계산한 자영업자는 768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33.6%에 이르렀다.

자영업자 비중이 10% 안팎인 미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자영업의 대부분인 농림어업 부문 비중이 축소되면서 국내 자영업 비중이 낮아지고 있지만 농림어업을 제외한 자영업 종사자는 1995년 420만 명에서 2004년 500만 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1월∼2004년 12월 업종별 자영업자 비율은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이 38.3%로 가장 많았다. 자영업자 연령은 35∼54세가 전체의 57%로 가장 많았고, 성별로는 남성이 69.7%를 차지했다. 학력은 △고졸 40% △초등학교 졸업 이하 24.6% △대졸 13.8%의 순이었다.

황재성 기자(팀장) jsonhng@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