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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6년 美연방대법 미란다 무죄 선고

입력 | 2006-06-13 03:00:00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다 30대 중반에 살해된 범죄자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공권력의 집행보다 절차적 정당성이 더 중요하다는 원칙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다. 법의 세계에서 두드러진 역설이다.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에서 22세의 어네스토 미란다가 강도 강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미란다는 2시간가량 심문을 받은 뒤 범행을 자백했고 피해자도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의심의 여지는 없었고 검사는 미란다의 자백을 유일한 증거물로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미란다는 돌변해 자백을 번복하고 진술을 부인했다. 애리조나 주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최저 20년, 최고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주 대법원도 마찬가지였다.

미란다는 마지막으로 연방대법원에 청원했고 연방대법원은 1966년 6월 13일 5 대 4의 표결로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제6조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 받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미국 사회는 들끓었다. 보수적 미국인들은 수사 과정에 미란다 원칙이 적용되면 피해자보다 범죄인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란다 원칙이 수사에 끼친 영향을 조사한 숱한 연구 결과는 미란다 원칙 때문에 법 집행이 좌절되리라는 예측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란다 원칙이 전 세계에서 보편화된 지금도 이에 대한 도전은 여전하다. 피의자가 미란다 원칙에 의한 권리를 자의로 기권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여전히 논란을 빚고 있다. 2004년 미국 미주리 주의 경찰은 피의자에게 먼저 자백을 받은 다음 미란다 원칙을 읽어 주고 기권을 받아낸 뒤 다시 자백을 받는 편법 수사를 하기도 했다. 미란다 원칙의 ‘정신’은 받아들이지 않고 조문만 형식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미란다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미란다는 재심에 회부돼 유죄선고를 받고 11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미란다 원칙을 적은 카드에 자필서명을 해서 1.5달러에 팔기도 했던 그는 싸움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미란다를 살해한 용의자도 체포될 때 예외 없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았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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