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골프의 간판 스타 박세리(29·CJ)가 오랜 부진의 터널을 빠져나와 활짝 웃었다.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근심에 젖어 있던 1998년 ‘맨발 투혼 샷’으로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르는 등 4승이나 거두며 국민에게 기쁨과 용기를 줬던 ‘국민스타’ 박세리가 다시 일어선 것이다.
박세리는 12일 미국 메릴랜드 주 해버디그레이스 불록GC(파72)에서 끝난 시즌 두 번째 메이저여자골프대회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최종 합계 8언더파 280타로 캐리 웹(호주)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 끝에 정상에 섰다.
▶ 박세리 선수 우승 인터뷰
이날은 2006 독일 월드컵 한국-토고전을 하루 앞둔 날. 특히 한국이 4강 쾌거를 이룬 한일 월드컵 열기로 한창 뜨겁던 2002년 6월에 이어 이 대회 세 번째 우승이어서 더욱 뜻 깊다.
박세리는 “우승하고 그린에서 펄쩍펄쩍 뛴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2년 넘는 긴 슬럼프에서 빠져나와 맛본 승리였기 때문. 그것도 여느 대회가 아닌 메이저 챔피언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라 기쁨은 더욱 컸다. 마음고생을 떠올리던 그의 눈망울은 붉게 물들어 갔다.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한 박세리는 2004년 5월 미켈럽울트라오픈에서 통산 23승을 올린 뒤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렸다. 우승 후 출전한 2개 대회에서 연속 컷오프 당하더니 13개 대회에서 한 차례 공동 2위에 올랐을 뿐 줄곧 하위권을 맴돌았다.
지난해는 최악이었다. 12개 대회에서 ‘톱10’에 단 한 차례도 들지 못한 채 예선 탈락 3회, 기권 4회. 시즌 상금 6만2628달러로 상금 랭킹 102위로 처졌고 평균 타수는 74.21타까지 치솟았다. 85타를 치기도 하면서 ‘주말 골퍼’ 수준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 손가락까지 다쳐 8월에는 ‘병가’를 내고 시즌을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더는 추락할 곳이 없어 보이면서 박세리는 온갖 루머에도 시달렸다.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충족시킨 후 목표 의식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혼 적령기를 맞아 남자친구 문제도 연이어 불거져 나왔다.
정작 박세리와 그의 ‘영원한 스승’인 아버지 박준철 씨는 난조의 원인을 마음의 병으로 진단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작은 실수 하나하나에 얽매이면서 더 큰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게 이들 부녀의 얘기였다.
그래서 박세리는 그 어느 때보다 훈련에 매달리며 잡념을 떨쳐 냈다. 하루 10시간 넘는 스윙 교정과 실전 라운드로 땀을 흘렸다. 정신력을 높이려고 킥복싱과 태권도도 했다.
새 희망 속에 올 시즌을 맞이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나빴다. 초반 5개 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60타대 스코어를 내지 못하며 컷오프 2회에 줄곧 40위권 성적.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4월 진클럽스 앤드 리조트오픈에서 2년 만에 ‘톱10’에 올라 자신감을 되찾았다. 당시 이 대회에서 동갑내기 김미현(KTF)이 4년 만에 우승한 것도 자극이 됐다.
아버지 박 씨의 도움도 컸다. 박 씨는 지난달 미국으로 건너가 딸에게 예전 전성기 때의 스윙 사진과 비디오 등을 보여 주며 끊임없이 자극을 줬다.
또 정신과 심리학박사까지 동원해 마음을 다스리도록 애썼다. 클럽과 캐디 교체로 분위기도 바꿨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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