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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오프사이드는 왜 반칙인가

입력 | 2006-05-31 03:04:00


《오프사이드의 재미는 공격팀 선수가 오프사이드 반칙에 걸리는가 걸리지 않는가 하는 아슬아슬한 플레이를 하고, 수비팀 선수가 오프사이드 함정을 치며 앞으로 전진할 것인가 그대로 골을 지키는가 하는 미묘한 선택을 하며, 심판이 그런 미묘한 플레이를 정확하게 판정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지점에서 솟아난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규칙이 처음부터 이런 재미를 노리고 축구나 럭비 규칙에 도입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이 플레이된 순간에 그 공보다 상대팀 골라인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경기자’의 경기를 제한 또는 금지하기 위해 고안됐다.―본문 중에서》

2006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 토고의 경기가 1 대 1 상황에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후반 40분, 전진패스를 받은 토고 공격수가 순식간에 슛을 날리고 현란한 골 뒤풀이가 벌어진다. 하지만 선심의 깃발이 올라가 있다. 종료 1분 전, 이번엔 우리 공격수가 같은 상황에서 골을 넣고 전광판의 숫자가 2로 바뀐다. 토고는 오프사이드라고 항의하지만, 경기는 2-1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난다.

누군가 묻는다. 왜 토고는 오프사이드 반칙이고 우리는 아닌가. 축구에 관심 있는 이라면 답변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프사이드가 왜 반칙이고, 그것은 누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 정한 것이냐고 재차 묻는다면, 대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 모든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 줄 책이 있다. 중세 영국의 마을축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오프사이드 규칙의 성립 과정과 근대 풋볼의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 낸 ‘오프사이드는 왜 반칙인가’가 그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책이 씌어진 계기 또한 저자가 고등학교 체육교사 시절 어느 학생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오프사이드 규칙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중반, 그리고 틀을 갖춘 것은 영국의 럭비학교가 최초로 풋볼 규칙을 성문화한 1845년의 일이다. 15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 오프사이드는 그것 없이는 이미 풋볼이 아니며 재미도 없을 만큼 특징적인 규칙이다. 하지만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에서 옆으로, 뒤로만 패스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하고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규칙’이 아닌가.

오프사이드 규칙의 비밀은 바로 공동체의 축제 풋볼이 ‘즐기기’ 위한 경기였다는 사실에 있다. 예컨대 18, 19세기에 풋볼은 남성성을 최대로 발휘하며 재미를 흠뻑 느끼는 데에 그 의의가 있었다. 따라서 승리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격렬한 몸싸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밀집상태를 이탈하여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 또는 ‘치사한 행위’로 취급되었다.

부활절을 앞두고 벌어진 중세 영국 마을축제의 꽃 ‘매스 풋볼’에서도 오프사이드는 ‘악덕’이었다. 무려 1000명의 사람들이 골대를 4km나 떨어진 거리에 세워 두고 하루 종일 언덕을 넘고 내를 건너며 도시의 큰길과 벌판을 휘젓고 달렸던 공동체 최대의 행사 매스 풋볼은 ‘1점 선취’, 즉 한 점을 먼저 얻으면 그것으로 ‘풋볼도 끝, 축제도 끝’이었다. 그러니 득점을 어렵게 해서 오랫동안 즐겨야 할 공동체의 축제를 오프사이드로 끝내 버리는 것은 얼마나 큰 죄악(?)이었겠는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전혀 다른 축구의 모습을 알게 됨과 동시에 월드컵이 더 재미있어질 테니까. 게다가 아시다시피, 이번 월드컵은 ‘오프사이드 규정’도 바뀌지 않았는가.

김지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