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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성희]‘대∼한민국’ 정치-경제엔 왜 없나

입력 | 2006-05-15 03:00:00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체육대회에 갔다가 요즘 유행한다는 꼭짓점 댄스를 음악에 맞춰 추었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대충 따라 하기 쉬운 율동이어서 다행이었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 마지막 날 행사였던 서울시향 공연에서는 월드컵 출전국의 대표적 음악을 메들리로 들을 수 있었다. 관객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며칠 전에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사은품으로 앙증맞은 붉은 악마 머리띠를 받아왔다.

TV 속의 세상은 독일 월드컵에 주파수가 맞춰진 지 오래다. 각종 교양·오락 프로그램이 월드컵을 축으로 제작되고, 4년 전 화면이 재연되면서 ‘2002년 again’을 외친다. 각종 상품 광고와 기업 이미지 홍보에 월드컵 상혼이 넘치지만 그 모양새가 과히 밉지 않다. 좌와 우, 남과 여, 어리고 늙음에 관계없이 모든 것들이 월드컵 코드로 수렴하고 있다. 국민배우에 열광하듯 사람들은 월드컵 이야기에 입을 모으고 승리를 기원한다.

과거사를 보는 관점에서부터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방안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치고는 모처럼의 합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그래서인지 미합중국 초기 국가모토였던 ‘이 플러러스 우넘(e plurus unum·다른 여럿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는 뜻의 라틴어)’을 연상시킨다.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에서 따온 이 구절을 국가 모토로 제안해 1782년 의회의 인준을 받았다. 당시 제각각이던 13개 주(州)를 하나의 국가로 엮기 위한 국부(國父)의 노력이 절절히 담긴 말이다. 미국의 모토는 훗날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신 안에서 믿는다(In God we trust)’로 바뀌었지만, 주가 50개로 늘어나고 이민 인구가 계속 늘어나 인종과 민족이 다양하게 변한 오늘날까지 다문화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건국이념은 변함없이 살아 숨쉬고 있다.

언설(言說)의 크기와 횟수는 희망에 비례한다고 수사학에서는 이야기한다. ‘이 플러러스 우넘’이라는 당시의 언표(言表)는 실상이라기보다는 희망의 표현이었다. ‘미국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국가적인 지표요, 지향점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지표를 말로 만들어 발설함으로써 희망을 구축하고 실현해 간다고 믿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고, 희망이 사라지면 말도 없어진다고 수사학자들은 강변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 사회에 월드컵 언설이 넘쳐나는 것은 사람들이 월드컵에 대한 희망을 구입한 결과이다. 그렇게 한 조각씩 희망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밤을 새워 응원한다. 반면 희망을 구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용하다. 곧 다가올 지방선거에 대해 반응이 뜨악하다면 그건 사람들이 선거가 던지는 희망을 구입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럭저럭 이미지가 좋은 후보들이 쏟아내는 주옥같은 공약도 웬만해선 우리들을 흥분시킬 수 없다면, 그건 그들이 팔고자 하는 희망의 품질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각종 분배정책을 실행하며 국민의 일부에게만 희망을 팔았다. 얼마 전 대통령은 “북한에 많은 것을 양보하겠다”며 심지어 북한에도 희망을 팔았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에는 어떤 희망을 주었는가.

마침 출산율은 뚝뚝 떨어지고 초중고교 유학생이 사상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육아에 지친 여성들은 조용히 아이 낳기를 거부하고, 교육정책을 불신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조기 유학 보낸다. 무언의 항거는 희망 상실의 증거이다.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휴전선 넘어서는 북한과, 남으로는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과 각각 화해하기 어려운 과거를 공유한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과연 무엇인가.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좌와 우가 함께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양일까.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월드컵을 넘어서 이런 물음들에 해답을 줄 수 있다면, 그래서 마치 희망의 주술(呪術)처럼 여기저기 끊어지고 흩어진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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