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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회장 24일 소환]“대기업은 1인기업 아니다”

입력 | 2006-04-24 03:01:00

검찰 선택은…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조성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검찰이 고심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 부자를 둘 다 구속하거나 불구속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누가 구속될지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영대 기자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정몽구(鄭夢九) 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朴英洙)는 정 회장을 24일 오전 10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정 회장과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와 관련해 채동욱(蔡東旭)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22일 브리핑에서 “혐의가 무거운 사람을 불구속하고 가벼운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증거 조작 아니냐”며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대차 협력업체들이 제출한 탄원서를 수사에 감안하느냐’는 질문에 “대기업은 1인의 기업은 아니지 않으냐”고 의미 있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 지휘부에서는 현대차그룹 경영 공백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고려해 정 회장을 불구속하고 정 사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23일, 대검찰청은 정 회장 조사 준비를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정 회장 신문을 맡을 최재경(崔在卿) 중수1과장과 여환섭(呂煥燮) 검사는 물론 박영수 중수부장과 채동욱 중수부 수사기획관 등 수사팀과 지휘부 모두 출근해 조사준비를 했다.

▽조사, 자정 넘길 수도=정 회장은 현대차가 만든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24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 청사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대검 1110호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는다. 이곳은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지난주 1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거물급 인사(VIP)’들을 조사하는 데 사용돼 왔던 1113호 특별조사실에는 수사 압수물이 들어차 있어서 1110호실이 정 회장의 조사실로 결정됐다.

1110호실 안에는 검사와 피의자가 마주 앉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소파와 화장실, 피의자의 진술을 녹화하는 폐쇄회로(CC)TV도 있다.

정 회장에 대한 신문은 최 과장이 직접 맡는다.

정 회장에 대한 조사는 자정 넘어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규모가 크고 내용이 복잡해 조사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검찰이 증거를 조작할 수는 없다”=수사팀은 정 회장 구속 의견을 강하게 내고 있다.

채 수사기획관은 “아들이 아버지 대신 총대를 멘다고 아버지 죄를 다 뒤집어쓸 수 있느냐”며 “이는 사법 정의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검찰이 말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정 회장이 구속 기소되더라도 법원에서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구속집행정지나 보석 등으로 석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 현대차그룹의 경영 공백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정 회장 구속 이후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검찰이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을 모두 뒤집어쓸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해 검찰 수뇌부가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 많이 나오지 마세요”=채 수사기획관은 21일 현대차그룹에 “직원을 많이 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수사 관계자가 기업에 이 같은 요청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채 수사기획관이 이런 요청을 한 이유는 정 사장이 출석한 20일 현대차그룹에서 100여 명의 직원과 경호원 10여 명이 나오는 바람에 큰 혼잡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유명 대기업 A 사장은 얼마 전 박 중수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저를 찾았습니까”라고 물었다. A 사장은 박 중수부장이 기업 비리 수사와 관련해 전화를 한 것인지 걱정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박 중수부장은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었지만 상당히 난감했다고 한다.

검찰은 고위 간부를 사칭한 전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현재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현대차 협력업체, 선처 탄원▼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 온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소환 조사가 24일로 다가온 가운데 국내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 협력업체들은 검찰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해외 딜러들도 이번 수사가 미칠 수 있는 이미지 추락 등 부정적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3일 재계와 검찰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부품공급 협력업체들의 모임인 현대·기아차협력회는 22일 이 그룹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협력업체 1800여 개사 임직원 5만 명의 서명이 담겼다.

이영섭(李榮燮) 현대·기아차협력회 회장 등은 탄원서에서 “현대·기아차의 경영 차질이 본격화되고 대외 신인도가 추락하면서 부정적 파급 효과가 날로 현실화하고 있어 걱정스럽다”며 “현대·기아자동차와 성쇠를 같이하는 협력업체에는 더욱 큰 부담”이라고 주장했다.

협력업체들은 또 “수사 결과 경영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경영은 뿌리째 흔들리게 되고 협력업체들에는 그 영향이 몇 배나 증폭돼 파급될 것”이라고 밝혀 간접적으로 정 회장과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은 “국민의 혈세로 거액의 부채를 탕감 받고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반성은 고사하고 하청업체 직원들을 이용해 구명 탄원을 한다니 어이가 없다”는 내용을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현대차 해외 딜러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스콧 핑크 미국 현대차 딜러 협회 회장은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북미 지역 딜러 대표 모임에서 “미국 고객들이 비즈니스 외적인 요소로 현대차 구매를 유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라며 “이번 사태가 판매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핑크 회장은 곧 협회 명의로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하는 공문을 현대차 본사로 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딜러인 ‘오브라이언 오토모티브’사는 현대차 본사에 보낸 공문에서 “이번 사태로 현대차가 해외에서 쌓아 온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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