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엔 ‘주사파’가 인기를 더해 가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주체사상에 매료되었던 그 주사파(主思派)가 아니라, 토요휴무제 실시 이후 주 4일만 강의를 듣는 실용적 주사파(週四派)들이 늘어남을 재치 있게 표현한 말이겠다.
실상 최근 대학가에선 과격 시위에 반대하는 자성론이 확산되고 있다. 고려대에서는 교수 감금을 반성하는 ‘교수님 죄송합니다’ 집회가 열렸고, 연세대에서는 ‘본관 점거’ 2주일여를 맞아 보통 학생들에게서 이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또 다채로운 경험과 이력의 소유자인 신임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앞으로 도서관 앞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한다.
대학가 풍경의 변화는 오래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돌멩이와 이념서적으로 상징되던 1980년대 풍경은, 1990년대 배낭여행과 고시열풍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00학번부터는 ‘청년실업’시대를 맞아 1학년 새내기부터 각종 자격증 취득 및 경력개발 준비에 교환학생의 열기까지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과 ‘시국’ 등 정치색 짙은 이슈가 시들해지자 각 대학 학생회에서 ‘등록금 동결 공동투쟁’의 깃발을 올렸지만 이조차 호응이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이다. 또 학교의 주요 결정에 학생 대표의 참여권을 보장해 달라고 외쳐 보지만, 역시 보통 학생들은 ‘그들만의 주장’을 무심히 지나치곤 한다. 결국 대학가 시위문화에 대한 자성 움직임은 소수 운동권 학생의 거대담론과 다수 보통 학생들의 실질적 관심사 간에 점차 괴리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보통 학생들의 밑바닥 정서를 적극 수렴하고자 한 ‘비운동권’의 학생회 진출이 활발해진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차제에 운동권 비운동권을 막론하고, 대학의 집회 및 시위문화가 한층 업그레이드되길 희망한다. 앞으로 대학의 집회 및 시위는 이슈의 신중한 선택과 더불어 방법상의 전환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슈를 선택할 때는 전적으로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대다수 학생의 절실한 관심사를 정확히 포착해야 할 것이다.
방법 또한 투쟁적 시위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학생만의 패기와 재치가 번득이는 신선한 방법이 다양하게 선보이길 희망한다. 영상세대답게 영상매체를 이용한 새로운 의사표현 전략 구사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제 史(사)의 물결’, ‘雜(잡) & Job(잡)’에서 보듯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구호의 창안도 기대된다. 무엇보다 대학이 민주적 협상과 조정의 과정을 차근차근 연습해볼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일전에 모 포럼에서 한국의 선진화 지수를 측정한 결과 대학은 정치 및 언론과 더불어 기업 및 시민사회에 비해 선진화 정도가 매우 낙후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학 졸업생=불량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데다, 세계 300위권에 드는 대학이 겨우 서너 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초라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인 셈이다.
물론 대학이 노동시장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취업양성소’로 전락하는 것은 견제해야겠지만, 아직도 캠퍼스 곳곳에 선정적 구호가 난무하고 과격한 점거 및 시위가 끊이지 않는 현실이 대학 경쟁력을 후진 상태에 머물게 한 주범의 하나임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마다 세계화 구호로 넘쳐나는 지금, 대학 세계화의 주역은 바로 대학생 자신임을 잊지 말고, 세계의 대학생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경험의 폭을 확대할 수 있는 날이 앞당겨졌으면 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