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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인정서 받으려면 빚 먼저 갚아라”

입력 | 2006-04-14 03:00:00


“K(여) 씨에게 줄 돈 5000만 원을 갚지 않으면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인정서를 줄 수 없다.”

“나는 K 씨에게 채무가 없다.”

지난달 13일 오후 2시경 대전 문화재청 이승규 차장실. 이 차장과 문상원 무형문화재과장 등 문화재청 간부들이 무형문화재 심의를 통과해 이날 인정서 수여식에 온 양모(58·여) 씨에게 개인 빚을 갚으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 간부들이 집무실에서 사인(私人) 간의 채무관계에 간여하면서 무형문화재 인정 문제를 결부시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채권이 있다고 주장한 K 씨는 현직 예술단체장인 C 씨의 부인이다.

▶본보 4일자 A5면 보도 참조

민주당 손봉숙(孫鳳淑) 의원은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를 폭로하면서 “문화재청 간부들이 개인 채무관계까지 나서 해결한 것은 직권 남용”이라며 “이 같은 일이 빚어진 것은 문희상(文喜相) 열린우리당 의원의 동생인 문재숙 이화여대 교수만 단독으로 예능보유자로 인정하게 되면 국악계의 반발이 너무 클 것을 우려해 (실력이 더 뛰어난) 양 씨를 이번에 함께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손 의원에 따르면 문 교수와 함께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부문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양 씨가 이날 문화재청사에서 열릴 예정인 수여식에 참가하려고 하자 직원들이 양 씨를 차장실로 데려갔다. 이날 인정서를 함께 받기로 돼 있던 문 교수 등 3명은 예정된 시간에 먼저 인정서를 받고 오후 2시 40분경 돌아갔다. 양 씨는 “K 씨 주장대로 채무가 있다면 법정에서 가리겠다”고 했지만 문화재청 간부들은 “지금 해결해야 된다”고 압박했다. 양 씨는 결국 오후 5시경 문 과장이 직접 작성한 합의서에 서명하고 문 과장의 개인 계좌로 5000만 원을 입금한 뒤 오후 6시 50분경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으로부터 인정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양 씨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한 인사는 “문 과장 등이 ‘(합의가) 잘돼 간다’는 등 상황을 수시로 유 청장에게 전화로 보고하는 것을 직접 봤다”며 “또 간부들이 ‘보유자 인정 결재는 이 차장까지만 한 상태로 채무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 청장이 결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또 “양 씨는 채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공무원들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인정서 수여를 보류하려는 듯한 분위기여서 어쩔 수 없이 합의서에 서명하고 돈을 입금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다음 날 5000만 원을 다시 양 씨에게 돌려주며 이 돈을 K 씨에게 입금하라고 요구했으며 입금 사실을 확인한 뒤 인터넷과 관보에 예능보유자 인정 사실을 공식 게시했다.

이에 대해 김홍렬 문화재정책국장은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민원을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좀 과한 면이 있었다”며 “하지만 유 청장한테 당시 상황을 보고하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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