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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작지만 강한 대학]싱가포르국립대

입력 | 2006-04-04 03:06:00

싱가포르국립대는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학부생의 20%와 교수진의 50%가 외국인일 정도로 국제화된 대학이다. 사진 제공 싱가포르국립대


《캠퍼스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녹색이었다. 덥고 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열대 식물로 캠퍼스는 식물원을 연상시켰다. 나무들 다음으로 눈에 잘 띄는 것이 언제든 공부할 수 있도록 복도, 건물과 건물을 잇는 통로, 휴게소 등에 수백 개 설치된 간이 책상과 의자였다. 그리고 캠퍼스 곳곳을 누비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 싱가포르국립대가 단순히 싱가포르의 대표 대학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글로벌’ 대학임을 보여 주는 풍경이다.》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학생들이 ‘노천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컴퓨터를 만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대화는 영어로 한다. 1일은 주말이었지만 간이 책상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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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싱가포르대 근처에는 술집은 물론 음식점조차 없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을 오가는 버스가 운행될 뿐이다.

캠퍼스를 누비는 스쿨버스에는 ‘글로벌 지식 기업을 향하여-교육, 연구, 기업가정신의 시너지 효과를 구축한다’는 학교 비전이 선명히 적혀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1일은 이 대학에 역사적인 날이다. 지난해 100주년을 맞은 이 대학이 이날부터 법인화해 정부로부터 독립하게 된 것이다.

베르나르드 토 기획조정실장은 “지금까지는 커리큘럼, 학사 일정 등에 대해 정부 지침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대학 운영의 자율성과 유연성이 확보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국립대인 만큼 정부의 지원은 계속된다. 이 대학은 법인화에 대비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3년 전 대학발전사무처를 만들어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추갱촨(周廣全) 현 사무처장을 영입했다.

대학발전사무처는 기업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기부금을 늘리는 임무를 맡고 있다. 현재 예산은 정부 지원금 75%, 등록금 22%, 기부금 3%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 중 기부금을 12%까지 높이는 것이 1차 목표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400만 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학 측은 법인화 개혁을 통해 2010년까지 현재 20%인 학부 외국인 유학생의 비율을 25%까지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 고촉통(吳作棟) 전 총리 등 거물 지도자들을 배출했던 이 대학이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싱가포르를 넘어선 글로벌”이라고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대의 개혁은 법인화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그 방향은 연구대학으로의 기능 강화였다.

우수 인재를 기르는 것과 함께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될 만한 첨단 산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2000년 시춘퐁(施春風) 총장은 여기에 박차를 가했다. 호봉제였던 교수의 ‘철밥통 임금’을 연봉제로 바꿨다. 연구 능력이 부족한 교수들을 퇴출시키고 연구 능력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젊은 교수를 대거 채용했다.

싱가포르국립대 캠퍼스 곳곳에는 간이 책상이 설치돼 있어 학생들이 실내 도서관뿐 아니라 밖에서도 언제든 공부할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학생을 위해 책상 근처에는 전원을 연결할 수 있는 콘센트가 설치돼 있다. 싱가포르=신수정 기자

“세계 각지 우수한 교수들이 몰리는 주요 학회에 대학 관계자 수십 명이 참가해 대대적인 교수진 확보에 나섭니다.”

그즈음 미국의 한 경제학회에서 열린 이 대학의 교수 채용 설명회에 참석한 조승규(경제학) 교수의 말이다. 조 교수는 이력서를 학교 측에 보냈고 엄격한 과정을 거쳐 채용됐다.

조 교수는 “대학 측이 놓치기 싫은 교수의 경우 연봉 100만 달러를 주고서라도 데려온다”고 전했다.

이 대학 1700여 명의 교수 중 절반이 외국인이다. 한국인 교수도 30여 명이나 된다. 학부 대학원생을 포함해 한국 유학생이 10여 명인 데 비해 3배나 많다.

일단 임용되면 매년 실시하는 교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 결과는 연봉 및 0∼200%로 차등 지급하는 보너스 액수를 결정하는 주요 잣대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또 62세 정년이 보장돼 있는 부교수 승진 심사의 경우 길게는 1년∼1년 6개월이 걸린다. 승진 대상 교수의 논문 및 연구 업적 등을 외국 유수대학의 동일 전공 교수들에게도 보내 평가를 받는다.

외부에서 평가 결과가 나오면 해당 학과에서 승진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으로 승진 심사를 진행한다. 동료 교수 2명이 직접 해당 교수의 강의를 듣고 점수를 매긴다. 승진 심사에서 절반 정도가 떨어진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의 변신 노력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의 세계 대학 평가에 따르면 공학계열은 9위, 바이오의학은 2004년도보다 무려 10계단이나 상승한 1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대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싱가포르=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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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교수 확보는 필요 아닌 필수 10여개 분야 최고 경쟁력 갖출것”

“대학 규모를 확장하기보다 지금과 같은 규모를 유지하면서 10개 내외의 특정 분야에 총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길러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달 고려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국제교육협회(APAIE) 총회에 참석차 최근 방한한 싱가포르국립대 시춘퐁(61·사진) 총장은 이 대학 개혁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인물. 그는 경영마인드를 갖춘 현대적 총장으로 평가받는다.

시 총장은 우수 교수 확보를 ‘필요(need)’가 아니라 ‘필수(must)’라고 말한다. 그가 개혁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로 우수한 교수진 확보. 교수들에 대한 급여지급 방식도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바꿨다. 학교 전체 예산의 70%가 인건비에 사용될 정도로 ‘사람’을 우대한다.

“우리 대학은 교육 중심에서 연구 중심 대학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구능력이 뛰어난 교수진 확보가 관건입니다.”

이 대학은 교수평가에서도 세계적 저널에서의 논문 피인용 수, 게재 건수 등 주로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평가한다.

그는 APAIE의 기조연설에서도 “아시아는 중국과 인도라는 두 엔진과 교육투자의 증가에 힘입어 경제적 역동성 및 성장에 있어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시 총장은 싱가포르 폴리테크닉대 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학(응용과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브라운대 교수를 지냈으며 생애 대부분을 미국 내에서 인정받는 공학자로 보냈다.

1996년 귀국과 동시에 재료 및 공학연구소를 설립해 이를 운영했으며 1997년부터 3년간 싱가포르국립대 부총장직을 맡다 2000년 총장직에 올랐다.

시 총장은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아 학교의 상징물을 사자에서 연어로 바꿨다”며 “우리 학교 출신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다 다시 돌아와 이 나라와 대학에 기여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시 총장 자신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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