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국무총리가 된다면 임기 이후에 개인 자격으로 통혁당(통일혁명당)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겠다.”
한명숙 총리 후보자의 남편 박성준(朴聖焌·66) 성공회대 NGO대학원 겸임교수는 총리 후보자 발표 이틀 전인 22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처벌이나 보상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오해를 풀고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지만 우선은 ‘외조(外助)’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박 교수는 1968년 이른바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돼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고 13년간 옥살이를 한 뒤 1981년 성탄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당시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 교수는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 기독교계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경제복지회’ 회장으로 모임을 이끌며 북한의 경제제도를 찬양 연구했고 아내인 한 후보자도 ‘포섭’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경제복지회 부회장이던 한 후보자도 이 사건으로 붙잡혀 갔으나 강원용(姜元龍) 목사와 교인들의 탄원으로 풀려났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당시 신영복(申榮福·현 성공회대 교수) 씨에게서 책을 빌려 읽은 것뿐”이라며 “자본론 등 당시 반공법에 저촉되는 서적이었지만 지금은 문제될 게 없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에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어떤 이데올로기도 신봉하지 않는다”며 “조선노동당이나 통일혁명당 같은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고 포섭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교수는 1981년 출소 후 신학에 입문했으며 한국신학대를 졸업하고 일본 릿쿄(立敎)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방문학자로 1997년 미국에 갔다가 2000년 개신교의 한 교파인 퀘이커교도가 됐다. 퀘이커교는 목사 없이 평신도 위주로 예배를 보는 교파다.
박 교수는 “퀘이커교 친우회에는 나만 입문했다. 아내는 경동교회 교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비폭력 평화의 물결’과 ‘아름다운 가게’ 등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통일혁명당 간첩단’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사건이다. 규모 면에서 6·25전쟁 이후 최대 조직 사건이었다. 지금은 중고교생 권장도서가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도 이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했다.
검거된 158명 중 73명(23명 불구속)이 검찰에 송치됐으며 김종태(金鍾泰)를 비롯한 주모자 4명은 사형을 당했다. 중정은 당시 통혁당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령을 받는 간첩조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통혁당 핵심 인사들과 어울렸던 진보적 지식인들은 중정에서 주모자로 지적된 김종태가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사형이 집행된 김종태에 대해 1969년 7월 당시 북한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영웅 칭호를 내렸다. 당시 김 주석은 “김종태와 같은 투철하고 준비된 혁명가를 육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혁당 사건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의 조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과거사위 안병욱(安秉旭·가톨릭대 교수) 간사는 “과거사위의 조사 대상은 사회적으로 의혹이 크거나 논란이 많은 사건이지만 통혁당 사건은 그렇지 않다”며 “주모자들에 대한 혐의가 분명해 정치적으로 과장이나 왜곡된 사건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