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추기경(오른쪽)의 머리에 추기경의 상징인 비레타(각진 모자)를 씌워준 뒤 성호를 그어 축복하고 있다. 바티칸 로이터 연합뉴스
신임 추기경 서임예식이 열린 24일(현지 시간)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백발의 정진석(鄭鎭奭·니콜라오)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홍색 주케토(둥근 모자) 위에 교황이 비레타(각진 모자)를 씌워 줬다. 정 추기경이 두 번째 한국인 추기경으로서 완전한 복장을 갖추는 순간이었다.
교황은 성호를 그어 축복한 뒤 정 추기경과 양쪽 뺨을 맞대며 가볍게 포옹을 나눴다. 단상 아래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 추기경은 지난달 22일 교황의 추기경 서임 발표 순간부터 추기경으로서 활동해 왔지만 비레타는 교황이 직접 씌워 주도록 돼 있다.
한국 두번째 추기경 탄생
정 추기경을 비롯한 신임 추기경 15명에 대한 서임식은 당초 바티칸 광장 왼편에 있는 바오로6세 홀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참석자들이 많아 광장으로 장소를 옮겨 오전 10시 반부터 진행됐다.
교황의 인사말로 예식이 시작됐다. 교황은 추기경 임명장을 낭독한 뒤 새 추기경의 이름을 장엄하게 선포했다.
“니콜라오 정진석.”
정 추기경이 8번째로 호명되자 한국 측 축하객 300여 명은 작은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이어 추기경 가운데 대표자가 교황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교황의 강론에 이어 새 추기경들이 신앙고백과 교회에 대한 충성서약을 한 뒤 추기경 모자 수여식이 시작되자 예식은 절정에 이르렀다.
교황은 새 추기경들에게 라틴어로 “추기경을 나타내는 진홍색은 추기경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자신을 용맹하게 헌신해 그리스도교 신앙과 평화, 하느님의 백성, 가톨릭교회의 자유와 복음 선포를 위해 헌신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훈화했다.
추기경들은 진홍색 수단과 미사 때 입는 중백의(中白衣)를 걸친 뒤 어깨 망토인 진홍색 모제타를 두르고 예식에 임했다.
이날 서임식에는 한국에서 온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교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해 또 한 명의 한국인 추기경 탄생을 축하했다.
이날 저녁에는 교황청 주재 대사관저에서 축하 만찬이 열렸다. 25일에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과 새 추기경들의 공동 집전으로 서임 축하 미사가 열리며 로마 한인신학원에서의 축하 리셉션, 교황 공개 알현 행사 등이 이어진다.
▼“국민행복 위해 노력않는 지도자 물러나야”▼
鄭추기경 紋章 확정
정진석 추기경의 신앙과 철학, 사목 목표 등을 상징하는 문장(紋章). 왼편에 있는 별 중 큰 별은 한국 전체를, 좌우의 별은 서울(남한)과 평양(북한)을 상징한다. 무궁화도 우리나라를 나타낸다. 아래 ‘OMNIBUS OMNIA’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란 뜻의 라틴어로 사도 바오로의 서한에서 뽑은 정 추기경의 사목 지침이다. 연합뉴스
정 추기경은 서임식에 앞서 23일 로마 한인신학원에서 한국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하고 “한국에 복수 추기경이 탄생한 것은 국력이 그만큼 신장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면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 애써 주신 국민께 감사하며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정 추기경은 “36년 전 로마에서 공부를 마칠 때만 해도 현지 지도책에 한국이 일본 땅으로 표시될 정도였으나 지금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며 “이런 덕택에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이어 추기경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국민 전체가 가정으로부터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데 최우선을 두겠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지도자의 역할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치 경제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은 자기의 행복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위해 큰 몫을 해야 한다는 것. 정 추기경은 “정치 경제 지도자들은 물질적 행복을 위해, 종교 지도자는 정신적 행복을 위해 애써야 한다”면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직하고 있는 정 추기경은 교황의 북한 방문 전망에 대해서 “교황님이 외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그곳의 성직자와 신도를 보살피기 위한 것”이라며 “교황님의 방문을 추진하려면 북한에 단 한 명이라도 상주하는 성직자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 추기경은 27일 교황을 다시 알현한 뒤 30일 귀국한다.
바티칸=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