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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관]경제 順航도 조심하는 日本

입력 | 2006-03-16 03:05:00


올해 미국 GM을 제치고 자동차 생산 대수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은 임원들에게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길 한복판을 걷지 말라. 그러면 고객의 얼굴이 안 보인다. 항상 길가로 걸어 다녀라.”

낙관적인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일본적 경영방식을 함축한 말이다. 비관론은 금물(禁物)이지만 위기의식은 항상 필요하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난 1주일간 경단련(經團連) 경제홍보센터 초청으로 돌아본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곳곳에서 넘쳐 났다. 2002년부터 시작된 경기 회복세에 탄력이 붙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지난해 3.4%(추정치), 올해도 2.7%에 이를 전망이다. 잠재성장률(1.2∼1.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전후(戰後) 최장의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자 ‘미니 버블’이란 표현까지 나온다.

일본 경제를 괴롭혔던 디플레이션에서도 7년 만에 탈출할 조짐이다. 소비자물가는 올해 1월 전년 대비 0.5% 올라 작년 말 이후의 ‘건강한’ 물가 상승 추세가 계속됐다. 2000년부터 ‘베이스업(기본급 인상)’을 중단했던 도요타자동차 노사는 올해 춘투(春鬪) 협상에선 월 기본급을 1000엔 올리는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썰렁했던 아카사카(赤坂)의 클럽들도 문전성시다. 기업 수익과 개인 소비, 기업 설비투자가 함께 늘어나면서 민간 주도 경기 회복의 ‘파란불’이 들어오자 전문가들 입에서는 “앞으로 5년은 끄떡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분위기 속에서도 어디서나 함께 들을 수 있는 얘기는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걱정과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을 내다봐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나고야(名古屋)에서 만난 미즈타니 겐지(水谷硏治) 주쿄(中京)대 교수는 “1950년대 초 경제기획청 파견 근무 당시 ‘일본 자동차산업은 경쟁력이 없는 만큼 2개사만 남기고 정리하자’는 복안을 심각하게 검토한 일이 있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패러다임이 장차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만큼 기술 개발과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주바치 료지(中鉢良治) 소니 사장은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인용해 “가장 성공했을 때가 불행의 시작이다. 항상 첨단을 달리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소니’를 내건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자나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봐도 일본의 경제 회복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요인에 대한 우려와 분석이 꼭 뒤따랐다. 재정 적자 처리 문제, 미국의 고금리 정책, 미국 시장의 위축 가능성, 유가 인상 등에다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악영향에 대한 분석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우리 정권 담당자들은 집권 3년 동안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낙제점 경제성적표를 받아 놓고도 “우리 경제는 끄떡없다”고 큰소리를 친다. 근거 없이 위기의식을 부추기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의 체감(體感)과 동떨어진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더 위험하다.

“건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앞을 보라.” 10년의 고통스러운 인내 끝에 경제 회복의 궤도에 오른 일본 민관(民官)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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