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시민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700번째 수요시위에 참가해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집회를 열어 왔다. 원대연 기자
“우리가 죽고 썩어 사라져도 역사는 살아 있다.”
15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15년간 이곳 좁은 인도를 ‘전쟁터’로 삼고 살아온 80대 할머니 11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늙고 쇠약한 몸을 이끌고 집회에 나선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회한이 묻어났다. 국내 48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2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열여섯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갔던 이용수(79)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일본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또 왔다. 이번이 700번째다. 네놈들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전까지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죽을힘을 다해서 또 올 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해 온 정기 수요 집회가 15일로 700회를 맞았다.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치지 않았던 집회였다. 매주 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0∼20명이 교대로 참가해 왔다.
500번째 시위(2002년 3월)부터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집회’로 등재됐다.
정대협은 이날 참가자들에게 무지개 색종이를 나눠줬다.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책임자 처벌, 법적 배상 등 7가지 요구 항목이 적혀 있었다. 우리 소리꾼 ‘바닥소리’와 서울여대 노래패가 할머니들을 격려했다.
이날 집회는 부산의 일본영사관 등 전국 주요 도시와 베를린 뉴욕 런던 등 해외 13개 도시, 도쿄(東京) 등 일본 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그러나 일본 대사관은 지난 15년과 다름없이 이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25명의 군위안부 할머니 중 105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일본 정부는 한 번도 군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 대명중에 다니는 이욱준(14) 군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배상도 못 받을뿐더러 일본이 세계를 속일 수 있게 한다. (할머니들은) 아프지도 늙지도 말아 달라”고 외치자 할머니들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