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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6-03-06 02:59:00

그림 박순철


오래잖아 장수들이 패왕의 군막으로 몰려들었다. 패왕이 내준 전서(戰書)를 읽어 본 계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문면(文面)이 어쩐지 수상쩍습니다. 곳곳에서 일부러 대왕의 심기를 건드려 우리 전군(全軍)을 그 싸움터로 끌어내려는 속셈이 훤히 보입니다.”

종리매도 못마땅해 하는 얼굴로 계포를 거들어 말했다.

“신이 탐마를 풀어 알아본 바로 적은 30만이나 되는 데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병이라고 합니다. 한왕이 봉지(封地)와 왕위로 달래 한신과 팽월은 각기 제(齊)나라와 양(梁) 땅에서 골라 뽑은 장정들만 데려왔고, 한왕이 몸소 이끄는 10만도 모두가 산동과 관중에서 가려 뽑아 단련한 지 오래된 군사들입니다. 그 날카로운 기세를 얕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다가 적은 모두 먼 길을 온 군사라 오래 시일을 끌수록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싸움을 서두는 것이니 대왕께서는 깊이 살펴 방책을 정하십시오.”

“허나 우리도 시간을 끌어 이로울 일은 아무것도 없다. 팽성 부근에서 거두어들일 군사도 이제 더는 없는 성싶고, 멀리서 달려와 도와줄 제후도 없다. 거기다가 군량마저 넉넉하지 못한데 싸움을 질질 끌어봤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패왕이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계포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한 번 더 패왕을 말렸다.

“비록 도성인 팽성을 잃고 많은 땅을 적군에게 짓밟혔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우리 근거지인 서초 땅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거둬들인 군량이 넉넉하지 않다고 하나, 30만이 넘는 대군을 몰고 천리 길을 달려온 한나라 군사보다야 못하겠습니까? 거기다가 고쳐 쌓은 성곽과 새로 세운 진채의 방벽과 보루도 든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두 곳에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며 굳게 지키면, 적이 아무리 대군이고 정병이라도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적이 고단하고 지치기를 기다려 들이치면 거록(鋸鹿)이나 수수(휴水)의 대승(大勝)을 다시 한번 기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패왕이 갑자기 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계포와 종리매를 번갈아 쏘아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자르듯 말했다.

“거록이나 수수의 승리는 우리가 참고 기다려 얻어낸 것이 아니다. 성나 떨쳐 일어나 죽기로 싸운 값이요, 하나가 백을 당할 기백으로 겁 없이 내달은 값이다. 오히려 우리가 진채에 엎드려 참고 기다리다가 얻은 것이 있다면 저 광무산에서의 낭패뿐이다. 과인은 이제 두 번 다시 까닭도 모르게 대군의 예기가 꺾이고 세력이 시들어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는 그날로 진채를 나와 전군을 이끌고 전서에서 일러준 싸움터로 달려갔다. 성곽과 진채에 각각 약간의 군사를 남겨 급할 때는 돌아와 의지할 수 있게 해둔 것이 계포와 종리매의 뜻을 감안한 유일한 조처였다.

한신은 패왕이 전군을 이끌고 정한 싸움터로 달려오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제왕(齊王)에서 한나라의 대장군으로 돌아가 장수들을 한왕의 군막으로 불러 모으게 했다. 장수들이 모두 모이자 한신이 스스로 윗자리에 앉더니 먼저 한왕을 우러러보며 말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