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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6-03-04 03:06:00

그림 박순철


이 무렵 패왕 항우는 해하의 낡은 성곽을 다 고치고 진채를 방벽과 보루로 둘러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군이 사방에서 소리 소문 없이 몰려들었다. 서쪽으로 한왕이 이끄는 군사만 바라보고 있던 패왕은 한신과 팽월 경포까지 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말을 듣자 은근히 놀랐다. 종리매와 계포에게 5만을 주어 성곽 안으로 들게 하고, 자신은 3만 정병으로 진채를 지켜 양쪽이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룬 뒤에, 사람을 풀어 한군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폈다.

패왕이 먼저 걱정한 것은 진채에 붙박혀 싸우면서 하염없이 시일을 끌게 되는 일이었다. 광무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문도 모르고 대군이 말라 시드는 꼴을 해하에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며칠 안돼 반가운 전갈이 왔다.

“남쪽에 있는 경포의 군사들을 빼고 한군은 모두 해하 서북의 벌판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30만 대군이 진세를 펼치니 실로 장관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한왕의 뜻이 초군을 에워싸고 싸움을 길게 끌고 가겠다는 것은 아닌 듯했다. 은근히 한시름 놓고 있는데 다시 한왕에게서 뜻밖에도 스스로 싸움을 재촉하는 전서가 왔다.

“유방 이놈, 이 겁쟁이 늙은 장돌뱅이가….”

구절구절 부아를 지르는 문면 때문에 패왕은 다 읽기 바쁘게 전서를 내팽개치며 그렇게 욕을 퍼부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기뻤다. 한왕과의 싸움에서 패왕이 늘 속상해한 것은 한번도 한왕의 본진을 마음껏 짓밟아 보지 못한 일이었다. 언제나 멀찌감치 숨어서 바라보며 사람의 화나 돋우다가 정작 쫓아가면 잽싸게 머리를 싸쥐고 달아나는 게 한왕 유방이었다.

“좋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늙은 목을 잘라놓겠다. 30만이 아니라 백만 대군이라 해도 이 전서에 적힌 대로 유방이 나오기만 하면 주머니 속에서 물건 꺼내듯 그 목을 잘라 단번에 전세를 결정하겠다.”

패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장수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