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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북한 엿보기]권력은 돈 ,돈은 권력

입력 | 2006-01-31 03:04:00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김철권 씨의 삼촌 K 씨는 동해안의 한 대도시 보안서(경찰서) 고위 간부다. 군에서 10년을 복무하고 보안서에 들어간 이래 충성과 청렴을 원칙으로 살았고, 승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부인이 “여보, 당신도 남들처럼 좀 고여 먹고(뇌물 먹고) 살면 안 돼요?”라고 호소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K 씨가 몇 년 전부터 완전히 변했다. 그는 요즘 반만 보안원이고, 반은 무역사업가다. 사무실에 일본과 통할 수 있는 팩스도 갖춰 놓았다. 전주(錢主)는 따로 있고, 일본서 들여온 물건을 팔아 주는 사람도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문제가 될 만한 일을 직접 처리하고 단속을 막아 주는 것이다. 이윤의 50% 이상은 그가 갖는다. 첩도 여러 명이다.

K 씨는 철권 씨 가족에게 “너희들도 직접 벌어먹고 살아라”며 장사 밑천을 대주고 중국 도강증을 발급해 줬다. 삼촌 덕에 단속으로 장사 물건을 떼인 일도 없다.

철권 씨에 따르면 삼촌의 변신은 몇 년 전 출장 갔다가 어느 부잣집에서 며칠 보낸 것이 계기라고 한다. 집에 돌아온 K 씨가 “내가 헛살았던 것 같다”고 자책하더라는 것.

K 씨의 경우처럼 최근 북한은 ‘돈을 벌려는 권력 계층’과 ‘권력이 필요한 상인 계층’의 결탁으로 급속히 부패하고 있다. 사실 오랫동안 권력 계층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북한에서 가장 윤택한 생활을 누려 왔다.

“당 간부는 당당하게, 군대는 군소리 없이, 안전부는 안전하게,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떼먹는다.”

“소대장은 소소하게, 중대장은 중간 중간, 대대장은 대량으로, 연대장은 연속해, 사단장은 사정없이, 군단장은 군데군데 떼먹는다.”

북한에서 권력 계층에 대한 이러한 풍자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최근 신흥 부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떼먹고 뇌물만 먹어서는 잘사는 부류에 들 수가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당에 입당하지 않아도 돈만 많이 벌면 1등 신랑감이다. 간부들의 주된 관심도 점차 권력에서 돈으로 옮겨지고 있다.

북한에는 1990년대 초에 외국과의 무역으로 부자가 된 ‘신흥 부자’ 1세대가 이미 출현했지만 곧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찍혀 재산을 몰수당하고 총살당하거나 감옥에 가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권력은 곧 하늘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몰아닥친 극심한 경제난으로 권력 계층의 도덕성은 무너져 내렸다.

배급이 끊기자 청렴하기로 소문난 김일성대 교수들까지 뇌물을 받고 성적을 조작했다. 뇌물도 노골화됐다. 지금은 아예 권력을 이용해 돈벌이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을 상대로 오랫동안 장사해 온 조선족 최길봉 씨는 “북한을 보면 중국과 러시아는 훨씬 깨끗한 사회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빈부격차 사회문제로 불거질 것”▼

북한의 경제 회복 과정에서 권력과 시장원리를 이용하는 신흥 부유계층이 형성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들은 국가보다는 개인적인 부를 창출하는 데 주력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 사회의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권력과 돈이 결합된 구조적 부정부패가 심화돼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들을 과거처럼 일벌백계 식으로 징계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제 규모도 크지만 북한 경제 활성화가 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상당수가 중국과의 경제 거래로 부를 쌓고 있어 일방적으로 단속할 경우 중국의 반발도 예상된다. 체제 유지에 이들의 협조가 불가피한 김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채찍뿐 아니라 당근을 주면서 이들을 관리하고 타협할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