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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잠수함’ 정대현의 존재 이유

입력 | 2006-01-03 03:03:00


박찬호(샌디에이고), 서재응(뉴욕 메츠), 손민한(롯데), 배영수(삼성)….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할 한국야구대표팀 투수진의 화려한 얼굴이다.

투수 엔트리 13명 중 6명이 메이저리그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다. 나머지 한국 프로 출신 투수들도 각 팀의 에이스 급이다.

그러나 다소 낯설게 들릴 만한 이름이 있다. SK의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28). 그의 2005시즌 성적은 20경기 출장에 1승 3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만 0.37로 눈에 뜨일 정도다.

투구 스타일도 그리 화려하진 않다. 구속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투수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게 된 국내 프로야구에서 그의 직구 평균 구속은 130km 내외다.

그렇지만 야구인들 사이에서 그는 ‘미국 킬러’로 각인되어 있다.

2000년 열린 시드니 올림픽. 그는 9월 20일 미국과의 경기에 깜짝 선발로 나서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엿새 뒤 준결승에서 미국을 다시 만나서도 6과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다. 당시 그의 직구 최고 구속은 지금보다 느린 128km. 흐물흐물한 듯한 그의 공 앞에 미국 타자들의 힘찬 방망이는 허공을 가르기에 바빴다.

그의 대표팀 발탁에 대해 선동렬(삼성 감독) 투수코치는 “미국과 남미에는 대현이처럼 밑에서 던지는 투수가 거의 없다. 스피드를 떠나 눈에 익지 않은 투수의 공을 치는 것은 무척 힘들다”고 설명했다.

일본대표팀도 같은 생각이다. 일본이 승승장구한다면 준결승 상대는 바로 미국이다. 오 사다하루 일본 감독은 정통파 투수인 마쓰자카 다이스케(세이부)나 우에하라 고지(요미우리)가 아닌 와타나베 온스케(롯데)를 미국전 선발 투수로 점찍어 두고 있다.

와타나베의 직구 평균 구속은 정대현보다 느린 125km 내외. 그러나 그는 전체 일본 투수를 통틀어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가 가장 낮은 투수로 꼽힌다.

대부분 투수들이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기 때문에 왼손 투수들은 상대적으로 희소성을 인정받는다. 절대 다수의 투수들이 위에서 아래로 공을 던지기 때문에 잠수함 투수인 정대현과 와타나베의 존재는 더욱 돋보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