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003년 8월 최도술(崔導術) 대통령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사실을 인지했으나 현직 비서관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경우의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비서관 사퇴를 종용했다고 당시 대통령 제1부속실 행정관을 지낸 이진 씨가 밝혔다.
국정기록행정관을 거쳐 올해 2월 청와대에서 퇴직한 이 씨는 최근 펴낸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노무현 왜 그러는 걸까’라는 책에서 이같이 주장했다고 연합뉴스가 11일 전했다.
이 책에 따르면 최 씨의 비리를 포착한 이호철(李鎬喆·현 국정상황실장) 당시 민정비서관은 2003년 8월 11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 및 최 씨 등과 청와대 관저에서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전 비서관과 현 비서관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며 최 씨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는 것. 최 씨가 얼굴이 창백해져 황급히 자리를 뜨자 이 비서관은 관저 문 앞까지 따라 나가며 “형님,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최 씨의 비리사건은 최 씨가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비서관직을 사퇴(8월 24일)한 이후인 10월 8일 검찰 수사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청와대는 그동안 최 씨가 비서관직을 사퇴한 이후인 9월 중순에야 최 씨의 비리를 처음 인지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책은 또 노 대통령이 2003년 10월 초 검찰이 정치자금 수사를 10대 재벌기업으로 확대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사법시험 동기생들과의 모임에서 “안대희(安大熙)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원칙대로 파헤치는 검사라는 이야기만 듣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3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때 “어디 내가 죽나”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 직무가 정지돼 청와대 집무실을 떠나 관저로 들어갈 때 노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밀가루를 뒤집어쓴 기분이로군”이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빙긋 웃었다고 한다.
이 책은 2004년 2월부터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다 올해 8월 그만둔 김우식(金雨植) 씨는 택시운전사들의 ‘쌍욕’까지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했으며, 이에 노 대통령이 “실장님은 왜 그런 이야기를 제게 자꾸 하십니까”라고 역정을 낸 일도 있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