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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TV영화/6일]‘버스, 정류장’ 외

입력 | 2005-11-05 03:07:00

버스, 정류장


◆버스, 정류장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마모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예민했던 감성이 마모되고, 소중했던 추억이 마모되고, 양심이 무너져 죄책감도 마모된다. “난 어른이 된 사람들이 싫어”라는 ‘버스, 정류장’의 주인공, 재섭의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각인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뻔뻔해지기 싫어 어른이 되길 거부하고 민감한 촉수 때문에 고립을 선택한 이들에겐 살아가는 것 자체가 따끔한 자극이다. ‘버스, 정류장’의 그들, 소희(김민정)와 재섭(김태우)이 그렇다.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과 학원 강사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자극적인 소재로 기억되지만 영화는 예측과 어긋난 곳에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버스, 정류장’은 타인과의 교류를 끊은 채 냉소적으로 살아가는 학원 강사 재섭과 마찬가지로 또래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외톨이임을 자처하는 여고생 소희의 사랑 이야기다.

루시드 폴의 음악, 조용히 관조하듯 흐르는 카메라의 시선과 함께 그들의 일상은 차분하지만 냉정하게 다가온다. 서로에게 섬이고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두 인물 사이의 여백에 음악만이 조용히 흐른다. 냉소적 학원선생을 연기한 김태우의 사실감 있는 연기나 소희와 재섭이 주고받는 대사들의 현실감이 급소를 찌르기도 한다.

어쨌거나 사랑은 사소한 변화이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재섭이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소희를 위해 운전학원에 등록하는 장면은 사랑이 얼마나 숭고한 변화이자 소통인가 하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스스로를 조금은 고립된 영혼이라 여기는 자들에게 무인도처럼 감미로운 쓸쓸함을 전해 줄 영화다. 감독 이미연. 2002년 작. ★★★★☆

◆이중배상

‘팜 파탈’(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위험한 요부)과 누아르의 전형을 제시하는 필름 누아르의 대표적인 흑백영화. 빌리 와일더 감독과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공동 작업. 이중배상을 노리며 보험사 직원을 유혹해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팜 파탈 디트리히슨. 단 한 번의 눈빛과 몸짓에 미혹돼 일생을 망쳐버린 남자 월터 네프의 고백체는 비장미의 품격을 높여준다. 원제 ‘Double Indemnity’(1944년). ★★★★☆강유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