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의 불모지에서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간 쇼트트랙의 여왕 전이경 씨. 부산=최재호 기자
“새로운 곳에서 의미 있게 살고 싶어 부산을 택했어요.”
‘쇼트트랙의 여왕’ 전이경(全利卿·29) 씨는 기자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4일부터 부산 해운대구 좌3동의 우창스포링크에서 아이스링크 코치로 근무하고 있다.
보수는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지만 빙상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부산에서 선수를 발굴하겠다는 각오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 번도 다른 지방에서 살아보지 않았다.
“친구들과 집에서는 ‘미쳤느냐’며 난리였지요. 일부에서는 시집을 그쪽으로 가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대접을 받고 가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어요.”
얼음판 위에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초등학생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전 코치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2관왕(1000m, 3000m계주), 1998년 나가노(長野) 동계올림픽 2관왕(1000m, 3000m계주)이다.
1999년 은퇴한 뒤 골프에 도전해 2003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세미프로 테스트에 합격하고 자격증을 땄다.
올해 5월부터는 동호회에서 취미로 아이스하키 스틱을 잡았다가 주위의 권유로 지난달 30일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인 그는 최근 2년간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심판과 선수강화위원을 지내면서 회의를 느꼈다. 연맹과 부모, 선수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끄러움에 휘둘리기 싫었다.
“타이틀이 있다 보니 너무 바빴어요. 이 행사, 저 행사 응하다 보면 진정한 내 모습은 없었지요. 그것도 정말 싫었습니다.”
8월 서울의 한 스케이트장에서 코치로 자원봉사를 하던 그는 부산 초등학생 2명이 전지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불모지를 개척해 보자”며 마음을 굳혔다.
전국체전에 참가했을 때 다른 지역 선수들과 워낙 실력차가 커 꼴찌를 면치 못하던 부산 학생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일할 곳을 찾은 뒤 우창스포링크 관계자와의 전화 한 통화로 부산행을 결정한 전 코치는 “선수가 많지 않고 제대로 된 시설이나 지도자가 없는 곳이 오히려 가능성이 더 많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