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심사를 하고 있는 육군이 괴문서 사건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진급심사 대상인 특정인을 비방 또는 음해하는 투서가 나돌거나 괴문서가 뿌려지곤 했던 일이 올해도 어김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의 인사검증위원회와 육군 중앙수사단 사무실 부근에서 A4용지 크기의 괴문서가 수십 장 발견됐다. 군의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이와 별개로 이는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진급심사가 군 내부 성원들에게서 아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육군 관계자들은 이번 괴문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지만 내용을 떠나 그런 문건이 유포된 것 자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인사 때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 뿌려진 괴문서가 결국 육군 장성 진급 비리 의혹 사건으로 확대되는 바람에 홍역을 치러야 했던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사 관계자들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다친 이 사건은 아직도 당사자들의 법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어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국방부 관계자는 “5월 초 진급심사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는데도 또다시 괴문서 사건이 터져 허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계급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군 조직에서 직업군인들이 진급을 위해 극심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과거 특정 군 출신이 요직을 독점했고, 이 때문에 군내에서 사조직을 이용한 줄서기 등의 폐습이 난무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투서는 그런 풍토에서 독버섯처럼 돋아나 아직도 자라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이 같은 투서와 괴문서가 난무하는 현실은 국민으로 하여금 군이 본업인 국방에는 관심이 없고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국방부는 국방개혁의 화려한 청사진을 펼쳐 보이고 있지만 공정한 군 인사를 통해 내부의 불만을 다독이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과연 내년 인사철에는 또 다른 괴문서가 나돌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군 수뇌부가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대책을 수립하기를 촉구한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