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노동계 대표가 오늘 총리 공관에서 만나 노-정(勞-政)관계 복원 문제를 논의한다. 정부 쪽에서 이해찬 총리와 김대환 노동부 장관, 노동계에선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참석한다. 모양은 4자 회동이지만 두 노총 위원장은 ‘김 장관 퇴진’을 집중 거론하기로 미리 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주무 장관은 제쳐 놓고 총리를 압박해 무언가 얻어 내겠다는 발상부터가 정상이 아니다.
두 노총은 노동운동을 탄압해 온 김 장관의 퇴진 없이는 노-정 관계 복원도 없다고 되뇌어 왔다. 요구가 아니라 협박 수준이다. 하지만 따져 보자. 김 장관은 노조의 도덕성과 노사(勞使) 자율 타결 원칙을 강조해 왔을 뿐이다. 노동계의 잇단 비리와 관련해 자성(自省)을 촉구한 것이 어떻게 노동운동 탄압인가.
올해 들어 드러난 노동계의 비리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총리 공관 회동이 발표된 그제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서울노총) 의장의 비리 의혹이 또 제기됐다. 서울시가 서울노총에 지원한 예산 가운데 4억여 원을 개인통장에 넣어 두고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두 노총은 리베이트 챙기기, 산하 노조의 ‘취직 장사’가 문제될 때마다 거듭나겠다고 다짐했지만 말뿐이었다. 자기 개혁은커녕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노사정위원회 탈퇴, 김 장관 퇴진 요구, 총파업 등 극한적인 정치 투쟁에 매달려 왔다.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지역 총회의 10월 부산 개최를 무산시킨 것도 다름 아닌 두 노총이다. 그런데도 노-정 관계의 파탄 책임을 김 장관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 노동계는 여러 가지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법, 노사 관계 선진화 방안(노사관계 로드맵)의 노사정 협의와 국회 처리 등이 그것이다. 오늘 회동은 김 장관 퇴진 요구가 아니라 노동정책의 기조(基調)를 면밀히 검토하는 생산적인 자리가 돼야 한다. 특히 이 총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다. 어설프게 노총을 달래려고 해선 안 된다. 정부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