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한국에서 하루 평균 태어나는 아이는 1301명. 반면 인공임신중절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아이는 하루 평균 960명인 것으로 추산됐다.
고려대 의대 산부인과 김해중(金海中)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실시한 전국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 내용을 12일 발표했다.
김 교수는 전국 200여 개 산부인과와 미혼여성 1500명, 기혼여성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미혼여성까지 포함한 전국 규모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르면 연간 인공임신중절 시술 건수는 35만590건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기혼여성은 20만3230건, 미혼여성은 14만7360건이었다.
또 설문조사에서 기혼여성 중 인공임신중절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36.6%여서 결혼한 여성 10명 중 4명꼴로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조사에 응한 병원과 여성들의 자발적 응답에 기초한 것이어서 실제 낙태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유전학적 장애나 질환,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 위협 등 낙태가 가능한 요건을 법에 규정하고 있어 조사에서 나타난 낙태는 대부분 불법시술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공임신중절률(가임기 여성 1000명당 연간 시술 건수)은 30.7건으로 나타났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은 22건, 유럽은 8∼17건 수준이다. 한국 못지않게 규제가 심한 멕시코는 28건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기혼여성은 30∼34세(33.6%), 미혼여성은 20∼24세(50.7%)가 가장 많았다. 미혼여성 중 10대는 8.4%였다. 대부분 임신 12주 미만일 때에 수술했지만 10대 중 12%는 임신 12주 이상으로 위험한 상태에서 수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임신중절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미혼여성의 95%가 미혼 등 사회경제적 이유를, 기혼여성의 75%는 가족계획을 들었다.
김 교수는 “낙태가 허용되는 독일의 인공임신중절률은 7.6건으로 낙태를 허용한다고 해서 낙태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면서 “현실과 법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범법행위를 막기 위해 인공임신중절 관련 규정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