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세무공무원이 불법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약 255만 평)의 19배인 4700여만 평(7000억 원 상당)의 국유지를 빼돌린 현대판 ‘봉이 김선달’ 같은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관련 부처 공무원이 국유지를 환수하기는커녕 이를 팔거나 헐값에 되사도록 도와준 일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30일 이 같은 내용의 ‘불법취득 국유지 환수, 특례매각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유지를 불법 취득한 전직 세무공무원 이모(75) 씨와 명의를 빌려 준 이 씨의 친인척 21명을 사기 및 공·사문서 위조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또 국유지 환수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재정경제부 하모 서기관 등 전현직 공무원 5명도 공문서 위조 및 업무상 배임,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사건 개요=국유재산매각업무를 담당하던 지방 세무공무원 이 씨는 1971∼74년 서류위조와 명의도용 등을 통해 자신과 친인척 명의로 국유지 3579만여 평을 불법 취득했다.
하지만 그의 사기 행각은 발각돼 대법원은 1994년 10월 이 씨 및 친인척의 국유지 취득무효 판결을 내리고 3579만여 평의 국유지를 환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고 1999년 12월까지 복역했다.
출소 후 3579만여 평 가운데 2682만여 평만 환수된 것을 안 이 씨는 재경부 하 서기관을 매수해 국유재산법령에 위배되는 특례매각(감정가의 20∼70%로 매각) 지침을 마련하도록 했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이 씨가 여러 기관의 공무원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뇌물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지침 덕분에 이 씨와 친인척은 3579만여 평의 국유지 가운데 91만 평을 매각해 439억 원의 부당 이익을 올렸다.
▽국유지 관리 소홀=박모 전 광주지방국세청 주사는 불법취득 국유지에 대한 부동산처분 금지 또는 시효중단 조치를 하지 않아 이 씨가 국유지를 불법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산림청 영암국유림관리사무소 박모 주사는 이 씨로부터 500만 원을 받고 위조된 매도증서를 근거로 국유지 17만 평을 특례매각했다. 무안군 이모(6급), 김모(7급) 공무원도 허위 매도증서를 토대로 이 씨 등에게 2억4000만 원의 환수보상금을 부당 지급했다.
이 씨와 그의 친인척이 이런 방식으로 국유지를 감정가의 20% 수준의 헐값에 매입하거나 환수 보상받은 국유지는 모두 357만 평(624억 원 상당). 이 중 145억 원 상당의 45만5000평은 제3자에게 전매된 뒤 10년인 시효가 지나 환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