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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낭송회 독일의 밤 깨우다

입력 | 2005-06-22 03:05:00

한국 여성작가 9명은 20일부터 독일 순회 한국문학 낭독회에 나섰다. 소설가 강석경(오른쪽) 서영은(오른쪽에서 세 번째) 씨가 이날 오후 슈투트가르트 ‘작가의 집’에서 낭독회를 갖고 독일 문학 관계자들과 한국의 문학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제공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여름이 시작되는 6월 독일은 오후 8시가 돼도 환하다. 20일 이 시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의 ‘작가의 집’과 여기서 차로 40분 걸리는 튀빙겐 시내 가스틀 서점에서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한국 문학 순회 낭독회를 동시에 열었다.》

가스틀 서점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자주 찾아 ‘블로흐의 의자’라고 불리는 의자까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튀빙겐대학 한국학 과정 학생들과 독일인 등 50명이 넘는 독일인들이 공지영 씨와 한강 씨의 낭독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독일 작가들의 낭독회 수준으로 청중이 찾아온 것.

하지만 슈투트가르트 ‘작가의 집’에서 열린 낭독회는 아직 유럽에선 생소하다고 할 한국 문학의 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11명의 독일인이 찾아왔을 뿐이다. 하필 이날 슈투트가르트의 5군데 공연장에서 ‘세계 연극제’ 행사가 열린 탓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청중 가운데는 문학 관계자들이 많았다. 클레트 출판사의 편집자 우르술라 메츠, 문학 저널리스트 마틴 볼프, ‘작가의 집’ 관장 아스트리드 브라운 씨 등이 자리했고, 남서독일 라디오(SWR)의 문학 프로그램 담당자 레르케 폰 잘 펠트 씨가 직접 사회를 봤다.

이 낭독회의 주연인 서영은 씨와 강석경 씨는 “수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며 각각 단편 ‘먼 그대’와 ‘숲속의 방’을 읽어 나갔다. 이어 독일어본을 낭독한 독일 성우 바르바라 스톨은 “한국 여성들의 미묘한 마음을 읽는 것 같아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서 씨가 “한국 문학에 대해 잘 모르고 지내는 게 여러분한테 결핍이 될 것 같아 찾아왔다”고 농을 건네자 독일인들은 기분 좋게 웃었다.

폰 잘 펠트 씨는 서 씨에게 “‘먼 그대’에서 강한 인내심을 간직한 여자 주인공이 한국의 전통 여성상이냐”고 물었다. 서 씨는 “그녀를 통해 진지하게 삶을 살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며 “‘그녀가 (상처받고도 쾌감을 느끼는) 여성 마조히스트가 아니냐’고 말한다면 나는 그녀처럼 (어이없이) 빙긋 웃을 뿐”이라고 답했다.

괴테의 나라인 독일은 문학 낭독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윤부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조직위 국제팀장은 “매년 3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도서전이 개최되는데 올해의 경우 도서전 기간 열흘 동안 도시 곳곳에서 1200회가 넘는 문학 낭독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주빈국으로 한국이 선정됨에 따라 주빈국 조직위는 사전 ‘예열(豫熱) 행사’로 3월부터 매달 독일 곳곳을 돌며 ‘한국문학 순회낭독회’를 열어 왔다.

6월은 처음으로 낭독회 작가들을 여성들로만 구성해 독일로 왔다. 서영은 오정희 강석경 신경숙 이혜경 공지영 하성란 배수아 한강 씨 등 9명이다. 이들은 25일까지 2, 3명씩 같이 옮겨 다니면서 슈투트가르트 뮌헨 등 독일 남부 주요 7개 도시와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의 빈을 돈다. 25일까지 낭독회를 끝내면 3월부터 연인원 48명의 한국 작가가 50회의 독일 현지 낭독회를 하는 셈이다. 평균 20∼100명의 청중이 찾아왔다.

2003년 독일 리베라투르(자유) 문학상을 수상한 오정희 씨는 “과욕을 내면 지친다. (한국 문학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아직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1일 날이 밝자 신경숙 씨와 함께 670km 떨어진 빈의 낭독회에 가기 위해 슈투트가르트 공항으로 달려갔다.

슈투트가르트=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