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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구술잡기]‘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입력 | 2005-05-20 17:16:00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강정인 외 지음/274쪽·1만5000원·책세상

세계미인대회 수상자는 서구적 미인인데도 ‘Miss Western’이 아니라 ‘Miss World’다. 한국 프로야구는 ‘한국시리즈’로 끝나는데, 미국 프로야구는 ‘월드시리즈’로 끝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인데도 유럽전쟁이라 부르지 않는다. 의심 없이 지나쳤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의 문제는 구술면접 담당자들이 즐겨 찾는 질문거리다.

이런 현상들의 원인과 대안은 ‘서구 중심주의’를 다룬 이론서인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광복 이후 우리는 서구 사회의 국가시스템과 가치관을 모방하는 것이 근대화라고 여겼다. 서구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고 세계의 중심이었다. 주변부 국가인 우리는 고유의 문화를 열등하게 여기고 서구의 체제와 문화를 적극 수용했다. 지구는 분명히 둥글지만, 인간 세계에는 엄연히 중심과 변방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책은 대학 교수의 강의 노트와 그 수업을 들은 대학생들의 글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교수의 설명은 중심 글에, 학생들의 사례 분석은 날개의 자리에 함께 등장한다. 교수가 추상적 개념이나 역사를 설명하면, 학생들은 각자의 일상에 녹아 있는 서구중심주의를 촘촘한 체에 걸러 낸다. 학생들은 밥 먹고, 길거리를 걸어가며,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는 모든 순간마다 주제에 집중하고 자기의식을 검토한다.

세계지도를 펼쳐 보면 대한민국은 동서양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동쪽이 서양이 되고, 정작 우리가 있는 곳은 동양이다. 음악이나 의학은 서양음악과 서양의학을 가리킨다. 반면 한국의 것은 국악이나 한의학으로 특수명칭을 갖는다. 영어를 잘하고 서구 문물에 익숙한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얻게 되는 지위나 보상이 달라진다. 학생들은 변방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동안 남의 시선으로 나의 세계를 보아 온 사례들을 기록한다.

문제(Problem)에서 문제(Question)가 나온다.

구술시험의 질문자들은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문제 상황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대안까지 제시한다면, 사고의 깊이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암기식 학습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이 대목이 가장 난감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대학생들은 지식과 현실이 만나는 방법을 보여 줄 안내자 역할을 한다. ‘아시아적 가치’를 주체적으로 발견하려는 대안 모색도 흥미롭다.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대학생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암기식 지식을 삶 속에 확장하는 법을 배우기 바란다.

권희정 상명사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