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대통령 글’ 이렇게 작성됐다. 전문
1. NSC 성명의 연장선
지난 18일 대통령은 조세형·최상용 전 주일대사,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및 외교관련 부처 장관들과 만찬을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일본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한일 간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이러한 생각과 고민은 지난 3.1절 기념사에 상당부분 배어 있다. 철저한 진실규명 등 그간의 한일관계에 비해 다소 ‘이례적인’ 수준의 언급을 한 것도 이 같은 고민의 결과다. 실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와 관련, 수차례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7일 수석보좌관 회의 때는 직접 한일관계에 대한 메모를 준비해 의제로 제시했다. 범정부 차원의 대책기구 설치, 일본의 진지한 자세 전환 필요성 등이 장시간에 걸쳐 논의됐다. 다음주인 1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중심 의제는 역시 한일관계였다. 이날 저녁에는 관계장관전략회의가 소집됐다. ‘대일 신독트린’으로 불리기도 하는 17일 NSC의 상임위원회 성명은 이들 회의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즈음 대통령은 부속실을 통해 NSC에 “외교관련 회의를 될 수 있으면 자주 소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8일 관련부처와 전 주일대사, 동북아시대위원장 만찬도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 대통령은 이날 모임을 계기로 그간 구상단계에 있던 ‘한일관계 관련 국민에게 드리는 글’의 집필에 착수했다.
글을 정리하면서 대통령은 계속 의견을 듣고 토론과 협의를 이어갔다. 21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도 절반가량이 독도 문제와 관련한 토론으로 채워졌다. 돌아보면 수석·보좌관 회의는 3주내내 한일관계를 의제로 논의했던 셈이다. ‘한일관계 관련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한 뒤인 26일에도 대통령은 관계장관전략회의를 주재, 후속조치를 점검했다.
대통령의 글은 이처럼 외교관련 부처 및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관계 전문가와의 계속된 토론 속에서 나왔다. 국민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기 위해 ‘대통령의 글’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지만 그 내용은 철저하게 외교관련 부처 및 참모진과의 토론의 결과였다.
2. 진실과 혼을 담은 대국민보고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수임 받은 대통령은 무한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이 관심과 우려를 갖고 있는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국민적 이해를 구하거나, 때로는 국민의 협력을 호소하는 것은 국가지도자의 당연한 의무다.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일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글’ 역시 마찬가지다. 연례적이고 의례적인 사안이 아니라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연일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상황이라면,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면 대통령이 이에 대한 확고한 원칙과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 역시 중차대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 이후 상황 및 미래의 전망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어 할 때가 있다. ‘대통령의 글’은 그 당연한 의무에 충실하고자 했던 고뇌의 산물이다.
보기에 따라선 외교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글’이 생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한편의 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다. 외교관련 부처 및 참모진과 고민과 토론을 거듭했고, 정책방향과 기조를 공유한 뒤 그 생각을 국민들에게 표현했다. 글의 내용 또한 17일 NSC 상임위원회가 발표한 성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NSC 성명과 차이가 있다면 대통령의 ‘진솔한 육성과 혼’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3. 반드시 지켜야 할 수준의 원칙
혹자는 대통령이 최후의 조정자로 한 발 물러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뭔가 여지를 남겨 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내세웠던 원칙을 경우에 따라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말을 전도시켜선 안 된다. 대통령은 결코 흥정할 수 없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원칙을 언급했을 뿐이다.
그 한 축은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다. 독도문제, 교과서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그것이다. 또 한 축은 한일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되 현안문제에 대해선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의지를 갖고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감정적 대응에 대한 경계와 자제의 호소다. 대통령은 “일본 국민 전체를 불신하고 적대시해서는 안 되며…냉정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것”을 당부했다.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대응할 것”과 “멀리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도 요청했다.
이들 원칙은 한일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진정을 숨김없이 반영하고 있다. 퇴행적 움직임에 대해선 끈기와 인내, 전략적 사고를 갖고 대응하되, 최대한 감정은 절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뒤틀린 현재’는 극복하되, 눈은 ‘화해와 협력의 미래’로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원칙이 어떻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버리고 후퇴할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