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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정치&현장]과천, 행정도시법 그 이후…

입력 | 2005-03-07 18:18:00

7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과천청사 이전 반대를 위한 투쟁선포식 및 과천시민결의대회에서 시민들이 “여야 밀실 야합으로 처리된 행정도시법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과천시는 과천 내 각종 단체와 연대해 정부청사 이전 반대를 위한 1000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신원건기자


‘조용한 도시’ 과천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2일 국회를 통과한 행정도시법 때문이다.

과천의 상징이자 정체성인 정부과천청사가 떠나면 ‘과천=행정도시’라는 20년 된 등식도 깨진다. 주민들은 “수년째 살기 좋은 도시 1위를 지켜 온 과천에 핵폭탄이 날아들었다”고 불안해한다. 정치권을 향한 불만도 팽배한 상태다.

▽뒤숭숭한 과천=6일 오후 서울과 과천을 잇는 남태령을 넘자 도로변에 나부끼는 플래카드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역갈등 조장하는 행정도시법 중단하라.’

정부청사에 가까워질수록 플래카드 문구는 점점 격해졌다. ‘백년대계 무시한 정치적 야합 청사 이전 계획 철회하라’ ‘과천식당 다 죽이는 청사 이전 결사반대’….

청사이전반대특별위원회, 별양동주민자치위원회, 과천문화원, 과천체육회, 굴다리상인연합회 등 과천의 웬만한 사회단체는 모두 반대운동에 뛰어든 듯했다.

정부청사 근처 상가지역의 변승열 새서울프라자 협동조합 이사장은 “청사만 바라보고 영업하는 수백 개 매장의 생계가 막막해졌다”며 상가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했다. 그는 “정치권이 표를 저울질하면서 청사 이전을 떡 주무르듯 하는 걸 보고, 주도하는 여당이나 방관하는 야당 가리지 않고 상인들의 감정이 극도로 좋지 않다”고 전했다.

부동산 거래도 뚝 끊겼다. 20년째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유병섭(53) 씨는 “미래가 불투명한 곳에 누가 들어오겠느냐”고 울상을 지었다. 7일에는 시민 600여 명이 정부청사 앞에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치가 삶의 질 떨어뜨려”=정부과천청사 공무원은 5000여 명. 이들은 과천 경제의 주축이다. 이 가운데 10% 정도가 과천에 거주하는 것으로 시는 추정한다. ‘영원한 과천 공무원’을 예상하고 과천에 터를 잡은 공무원들은 이삿짐을 싸야 할지, ‘주말부부’가 돼야 할지 당혹스럽다.

‘공무원 집단 이주’의 그늘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게 여인국(余仁國) 과천시장의 설명. 그는 “시민 대부분이 안락, 안전, 전원이 좋아 과천에 사는데, 난데없이 포클레인으로 도시를 파헤치고 수만 명이 들고나면 삶의 질이 뚝 떨어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행정도시, 전원도시, 살기 좋은 도시라는 자부심과 무형의 자산에 대한 상실감도 만만찮다. 꽃집을 운영하는 강후자(38) 씨는 “정부 말대로 정부청사 대신 대학이나 벤처기업이 들어오면 장사는 나아질 수도 있다”면서도 “조용한 도시 분위기가 깨지는 게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개발 약속이 먹혀들 여지는 찾기 힘들었다.

▽정치적 파장=주민들은 청사 이전을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야합’한 결과로 보고 있다. 주민 정서를 등에 업고 과천시와 의회, 과천이 지역구인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 의원 모두 이전반대투쟁에 적극 나섰다.

곽현영(郭賢泳) 시의회 의장은 “정치권이 과천 인구가 7만밖에 안된다고 얕보고 청사 이전 논의에 주민들을 철저히 소외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선을 치르고 정치상황이 바뀌면 결국 청사 이전은 안될 것으로 믿는 주민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선거에서 과천은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줬다.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48%,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46%를 득표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50%, 열린우리당 후보가 37%를 얻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최근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 분할이 아니라 과천청사 이전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다”고 말한 데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과천=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