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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회 아카데미 시상식 ‘밀리언달러 베이비’ 4관왕

입력 | 2005-02-28 18:15:00



황금분할이었다.
28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꼭 받아 마땅한 영화들’에 ‘꼭 받아 마땅한 부문의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주는 지혜롭고 냉정한 선택을 했다.
주요 부문상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에비에이터’가 양분해 가져갔다. 감동적인 내용이 빛나는 ‘밀리언…’은 작품성과 관련된 부문을, 화려하고 큰 스케일을 뽐내는 ‘에비에이터’는 주로 비주얼과 관련된 부문상을 다수 차지했다. 이로써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11개 부문을 독식한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배분의 미학’을 보여줬다.
여성 복서와 나이든 트레이너의 눈물겨운 우정을 담은 ‘밀리언…’은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힐러리 스웡크) 남우조연상(모건 프리먼) 등 아카데미상의 핵심 4개 부문상을 차지했다.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로 1993년 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두 번째로 감독상을 거머쥔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75)는 “영화를 찍은 37일간은 아주 멋진 모험이었다. 아직도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면서 “96세 된 어머니도 저기 (객석에) 앉아 계시지만 정말 그 (젊은) 유전자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혀 감동과 웃음을 자아냈다.
이 영화의 제작진을 일컬어 ‘노인병 팀’이라고 한 이스트우드의 농담대로 ‘밀리언…’의 수상은 ‘노장의 승리’였다. 아카데미상에 도전한 지 네 번째 만에 남우조연상을 차지한 프리먼은 올해 68세이며, 영화의 배경인 힛핏 체육관을 만든 프로덕션 디자이너 헨리 범스테드는 89세다.
‘밀리언…’은 스웡크의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겹경사를 맞았다. 그 역시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2000년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31세의 나이에 두 번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 제작자이자 항공업계의 거물이었던 하워드 휴즈의 전기 영화인 ‘에비에이터’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11개 후보에 오르며 다관왕의 기대를 모았으나 여우조연상(케이트 블란쳇)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등 비핵심 5개 부문 수상에 그쳐 ‘최다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다섯 번째로 도전한 마틴 스코시즈(63)는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남우주연상은 전설적 맹인 가수 레이 찰스의 삶을 담은 영화 ‘레이’에서 주인공역을 맡아 “레이 그 자신”이란 찬사를 받은 제이미 폭스에게 돌아갔다. 폭스는 시드니 포이티어(1963년), 덴절 워싱턴(2002년)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 역사상 세 번째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흑인이 됐다. ‘레이’는 남우주연상 음향상 등 2개 부문상을 받았다.
올해 시상식은 어느 때보다 많은 흑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눈길을 끌었다. 올해 처음 시상식 사회를 맡은 코미디 배우 크리스 록과 남우주연상의 폭스, 남우조연상의 프리먼을 비롯해 무려 3곡의 주제가상 후보곡을 무대에서 부르는 ‘특혜’를 누린 가수 비욘세, 시상자로 등장한 가수 프린스, 퍼프 대디, 여배우 핼리 베리 등의 모습에서는 아카데미가 백인 중심의 공고한 벽을 낮추려고 노력한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 ‘버스데이 보이’로 단편 애니메이션상 부문 후보에 올라 한국인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기대됐던 박세종 감독은 아쉽게 상을 받지 못했다. 또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에 올랐던 ‘네버랜드를 찾아서’와 5개 부문 후보였던 ‘사이드 웨이’는 각각 작곡상과 각색상 수상에 그쳤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신들린 연기… “흑인의 꿈 실현”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제이미 폭스(38)가 호명되자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기립박수는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폭스에 쏟아지는 것이자 그가 연기한 전설적 흑인가수 레이 찰스(1930∼2004)에 바쳐진 경의였다. 폭스는 “레이 찰스가 남긴 아름다운 유산 덕분에 이 상을 받게 됐다”고 감사한 뒤 객석에 앉은 핼리 베리, 오프라 윈프리, 그리고 그에게 용기를 준 대선배 시드니 포이티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우리, 흑인의 꿈을 계속 실현해 나가자”고 말했다.
올해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콜래트럴’) 후보에 동시 지명되며 기염을 토했지만 폭스의 영화배우 경력은 6년에 불과하다. 연예인으로서의 출발은 코미디클럽의 스탠딩 코미디언. 노력파인 폭스는 ‘레이’를 연기하기 위해 매일 일정시간 눈을 가리고 살면서 한동안 폐소 공포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폭스는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 손에 자랐다. 그가 수상소감에서 “내 최초의 연기선생님”이라고 감사를 표한 할머니는 폭스에게 마치 레이 찰스의 어머니처럼 “생각 있는 사람처럼 행동해라”고 엄격히 가르쳤다. 작고한 할머니를 추억하던 폭스는 끝내 울먹였다. “이제는 꿈에 나타나시는 할머니, 오늘밤엔 너무 할 말이 많아 잠들 때까지 기다리질 못하겠어요. 사랑해요.”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2번째 영광… “아카데미에 큰 빚”

“배우로서 저는 아카데미에 영원히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째 거머쥔 힐러리 스웡크(31). 2000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 이어 데뷔 13년 만에 오스카상을 두 번이나 받은 상복 많은 배우다. 그러나 스웡크는 결코 신데렐라가 아니다.
수상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그녀는,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 하나에 기대어 거친 삶에 맞서는 가난한 30대 여자복서 매기 피츠제럴드를 연기했다. 운동으로 8.6kg의 근육을 만들어 대역 없이 매기를 연기한 스웡크는 코뼈가 내려앉고 눈이 터져 피를 흘리는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몸을 사리지 않는 ‘파이터’ 기질의 여배우다.
수상소감에서 “트레일러 파크에서 자란 소녀로서 내겐 꿈이 있었다”고 밝힌 것처럼 그녀는 이혼한 홀어머니와 집도 없이 트레일러에서 기거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오스카상을 받은 후에도 스웡크는 한동안 건강보험 없이 살았을 만큼 가난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클린트, 당신은 나의 ‘모쿠슈아’예요”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대한 그녀의 헌사는 영화를 본 사람만이 풀 수 있는 아름다운 수수께끼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차분하고 우아하게… 오스카의 女神들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패션 코드는 한 마디로 ‘우아(Elegance)’였다. 레드 카펫을 밟은 여배우들은 지난해의 화려하고 풍만한 디자인보다는 단아하면서도 품위 있는 스타일을 보여줬다.
‘클로저’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내털리 포트먼은 가슴선의 ‘V’자가 배꼽 가까이까지 파인 카키색 드레스에 두 줄의 진주 허리띠를 둘러 신비스러운 여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힐러리 스웡크는 등이 깊게 파이고 소매가 긴 짙은 블루 드레스(기라로시 제작)를 입어 차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에비에이터’의 케이트 블란쳇은 튜닉 스타일의 은은한 황금빛 드레스를 선보였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열정과 애정’에 출연했던 르네 젤위거는 몸에 꼭 끼는 인어스타일의 붉은색 드레스를 입어 영화 때문에 늘어난 몸무게 11kg을 간단히 이겨냈음을 증명했다. ‘이터널 선샤인’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케이트 윈즐릿은 디자이너 베즐리 미시카가 제작한 파스텔 톤의 연청색 가운을 입었다.
(도움말=패션정보회사 인비트윈(Inbetween) 스타일리스트 김희연)



우아함이 두드러진 여배우들의 드레스. 왼쪽부터 나탈리 포트만, 르네 젤위거, 에미 로섬.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부문별 수상자(작품)>


○작품상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감독상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남우주연상 제이미 폭스(레이)
○여우주연상 힐러리 스웽크

(밀리언 달러 베이비)
○남우조연상 모건 프리먼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여우조연상 케이트 블란쳇
(에비에이터)

○각색상 사이드웨이
○각본상 이터널 선샤인
○촬영상 에비에이터
○편집상 에비에이터

○미술상 에비에이터
○음향상 레이
○음향편집상 인크레더블
○시각효과상 스파이더맨2
○의상상 에비에이터
○분장상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작곡상 네버랜드를 찾아서
○주제가상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장편 애니메이션상 인크레더블
○단편 애니메이션상라이언
○장편 다큐멘터리상 본 인투 브로델스
○단편 다큐멘터리상 마이티 타임즈
○외국어영화상 시 인사이드
○단편영화상 와스프
○공로상 시드니 루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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