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출신의 지속적인 증가로 경찰 내부의 인사 적체와 조직의 기형화가 심각해지고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전직 경찰 고위 간부는 최근 사석에서 “몇 년 안에 경찰대 출신 문제로 치안총수가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많은 경찰 간부와 전문가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이들은 “경찰대와 비(非)경찰대 출신, 또 경찰대 출신 간의 갈등이 더 이상 노골화되는 것을 막고 건강한 경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찰 수뇌부가 시급히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티 경찰대’=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경찰 전체 인원에 비해 간부의 비율이 턱없이 낮아 ‘승진 병목현상’이 심각하기 때문. 경찰의 입문 경로가 순경, 경위(간부후보와 경찰대), 경정(국가고시) 등으로 다원화돼 있어 조직 간 반목이 존재하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일례로 일선 경찰서 경정 이상의 비율은 전체 경찰 9만3000여 명의 1.9%에 불과하다. 서장급인 총경 승진자는 1년에 55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
해마다 경찰대 출신 120명, 간부후보 출신 50명, 고시 출신 10명, 순경 출신 700여 명이 경찰에 입문하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수. 이에 따라 인사 때마다 많은 인재가 옷을 벗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다.
경찰대 출신의 한 간부(경정)는 “평가 내용은 우수했지만 순경 출신을 무조건 총경으로 승진시키라는 청장의 지시로 내부경쟁에서 탈락했다”며 ‘역차별’을 주장하기도 한다.
반대로 순경이나 간부후보 출신들은 ‘엘리트 집단’인 경찰대를 향해 불만을 쏟아낸다.
2003년 2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안티 경찰대’(http://cafe.daum.net/antinpu) 카페가 만들어진 것이 일례. 이 카페와 하위직 경찰 공무원들의 인터넷 모임인 ‘차돌이닷컴’ 등에서 순경과 대학 경찰행정학과 재학생들은 경찰대의 폐지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경찰대 개혁은 최우선 과제”=경찰대 개혁은 경찰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 조직 전체가 걸린 ‘뜨거운 감자’가 돼 버렸다. 이 같은 인식에서 과거에도 몇 차례 경찰대 개혁이 시도됐지만 우수 인력의 유치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번번이 좌절됐다.
2003년 최기문(崔圻文) 전 경찰청장이 경찰대 정원을 120명에서 80명으로 축소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백지화된 것이 대표적 사례.
동국대 임준태(林俊泰·경찰행정학) 교수는 경찰대 폐지보다는 독일처럼 정원을 80∼120명으로 유동적으로 운영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그는 “경찰대 문제는 우수인력 확보와 내부 구성원 불만 해소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충족시키는 ‘윈-윈 게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대 표창원(表蒼園·범죄학) 교수도 “엘리트를 충원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되지만 폐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직 경찰관의 경찰대 편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경찰대 존폐 논란▼
경찰대는 1981년 3월 개교한 직후부터 끊임없는 특혜 시비와 존폐 논란에 휩싸여 왔다.
무엇보다 1979년 12월 28일 공포된 ‘경찰대학 설치법’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당성 문제가 당시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제기되고 있다.
유신 말기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시절에 사관학교식의 기본 틀이 마련됐기 때문.
또 순경 출신 등 비(非)경찰대 출신들은 학비 전액 무료, 졸업 직후 경위 임용, 6년간 경찰 복무 시 병역의무 면제 등 경찰대학생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부분 고졸이었던 1980년대 초반과 달리 최근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순경에 임용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특혜는 ‘우수인재 확보’라는 명분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
특히 경찰대 출신들이 고급간부가 되면서 경찰 수사권 독립 주장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하자 경찰 안팎의 견제가 더욱 심해졌다.
수사권 독립 논란이 한창이던 2003년 한 현직 검사는 검찰 내부 게시판에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간부로 자동 임용하는 제도는 위헌 소지가 높다”며 경찰대 폐지론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대 총동문회장이었던 황운하(黃雲夏·1기) 총경은 경찰대동문회 홈페이지에 ‘경찰 수뇌부가 수사권 독립에 소극적이며 이는 패배주의적 자세’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