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하늘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걷고 있다. 그림 한 쪽이 무너져 내리듯 거대한 심연으로 빨려든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두 손을 뺨에 대고 있는 힘을 다해….
아무도 그 절규를 듣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1994년 2월 12일 오전 6시 반, 노르웨이 오슬로 중심가의 국립미술관.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특별전 기간이었지만 개관시간 전의 미술관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날이 밝아서야 소동이 벌어졌다. 인간 내면의 불안을 형상화한 명화 ‘절규’가 걸려 있던 자리에는 ‘소홀한 감시에 감사합니다’라는 메모 한 장만 달랑 남겨져 있었다.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사건의 전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범인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그림을 떼어낸 뒤 50초 만에 사라졌다.
그림의 감정가는 5400만 달러(당시 가격 약 430억 원). 이렇게 비싸고 널리 알려진 ‘장물’을 선뜻 살 사람은 없으니 ‘돈’은 절도 동기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주류였다. 그러나 범인은 몇몇 장물아비를 상대로 값을 흥정하다 3개월 만에 경찰의 안테나에 걸려들었다. 결국 그림은 박물관에서 90km 떨어진 한 호텔에서 ‘상처 없이’ 발견됐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0년이 흐른 뒤인 2004년 8월, ‘절규’는 오슬로의 뭉크미술관에서 또다시 ‘유괴’당했다. 이번에는 한낮에 범인이 관람객들 앞에서 박물관 직원을 총으로 위협한 뒤 ‘절규’와 뭉크의 또 다른 걸작 ‘마돈나’를 떼어갔다.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작품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세계 도난 예술품 시장의 거래 규모는 총 6조 원. 장물 시장의 약 7%를 차지하는 ‘거대 마켓’이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는 예술품이 마약, 돈세탁, 무기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범죄시장이라고 파악한다. 예술품 절도를 다룬 홍콩 영화 종횡사해(縱橫四海)의 제목처럼 절도범들은 오늘도 세계를 종횡무진 누빈다.
도난당한 두 명작은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까. 영원히 사라져 버릴까, 아니면 기묘한 취미를 가진 악당의 서재에 걸린 채 세간의 시선에서 차단당할까. 전문가들은 “몇 세기가 지난 뒤 돌연 햇볕 아래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