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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종료

입력 | 2005-02-01 18:27:00


“사랑하는 부모님, 가능하면 먹을 것을 좀 보내주세요. 이런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춥고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습니다.”

“이곳 상황은 너무나 비참하고 절망적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여기서 죽을 것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너무 슬퍼하지 말기 바란다.”

죽음 앞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독일과 소련이 맞붙은 1942∼43년 겨울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는 지옥이었다. 병사들의 편지에는 극한에 다다른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1943년 2월 2일 추위와 굶주림을 못 이긴 9만1000여 명의 독일군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미 양측 군사와 민간인을 합쳐 150만 명이 희생된 후였다. 단일 전투사상 가장 참혹했던 것으로 기록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약 6개월 만에 그렇게 막을 내렸다.

볼가 강 연안의 도시 스탈린그라드. 산업의 중심지이면서 카프카스 유전과 소련의 주요 지역을 잇는 석유 공급 거점. 독소(獨蘇)전쟁(1941∼45년)의 지도자였던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에게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1942년 여름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장군이 이끄는 독일 제6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독일군이 쉽게 이길 것으로 보였지만 소련군의 저항은 끈덕졌다. 지루한 소모전이 시작됐다.

11월 중순 소련이 독일군을 완전히 포위하면서 전세가 소련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떨어졌고 철수하지 않으면 군대를 모두 잃게 될 상황. 이미 이성을 잃었던 것일까. 히틀러는 옥쇄(玉碎)를 주문한다.

20세기 들어 군 복무는 의무이자 미덕으로 칭송된다. 전투는 끊임없이 대체되는 병력을 바탕으로 어느 한 쪽의 전의(戰意)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히틀러에게 인간은 목적을 위한 소모품이었다.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사료(史料)는 당시 소련의 비밀경찰이 ‘비겁자’라는 죄목으로 1만3000명을 체포하고 처형하며 참전을 독려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애국심이 필요한 순간마다 소련 지도자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부활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